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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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앙금

2020-06-2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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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역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 창궐, 그로 인한 실업사태와 폭동, 인종간의 갈등, 정치적 분열 등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 고비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중국과의 무역전쟁, 대립을 통해 세간의 이목과 시선을 외부에 집중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현재 코로나 창궐을 초기에 막지 못했고, 인종간의 갈등을 부추긴다는 여론의 강한 질타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그의 최측근에 있던 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그에 대한 폭로성 회고록까지 나올 예정이어서 더없이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재선을 앞둔 그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지금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인종간의 분열과 갈등이다. 이 난제를 잘 수습할 수 있는 인물이 오는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지 않을까. 이제껏 미국이 겪은 가장 큰 위기는 150년전 치른 내전이었다. 노예소유를 허용하는 남부와 이를 반대하는 북부 사이의 갈등에서 빚어진 남북전쟁은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임기에 촉발되었다. 노예제 폐지를 둘러싸고 일어난 이 전쟁은 4년간 계속되었고, 사망자와 부상자는 무려 60만명에 달했다, 나라가 절단 나는 그야말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후 미국경제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가져왔지만, 남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철도시설이 없어 충분한 경제재건을 할 수 없었다.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까지 치른 미국은 어쩌면 하나의 나라로 봉합되기가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남부연합군이 패하긴 했지만 맹렬하게 싸운 지도자들을 기리는 동상들이 세워졌고, 이는 전후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기념물들은 오랫동안 불평등을 상징하는 혐오조형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전국으로 확산된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 여파로 남부군을 지휘했던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기마상이 철거된다. 또 다른 남부 지도자들의 동상과 기념물도 철거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부연합의 상징물 철거 운동이 이처럼 곳곳에서 벌어질수록 남부 문화전통에 자부심을 가진 KKK같은 백인 우월 단체, 보수 성향 정치 종교지도자들은 또 한 차례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를 거세게 내고 있다.

남북의 많은 젊은이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등에 통일된 미국 국민으로 참전, 남북전쟁의 앙금이 표면상으로는 희석된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아직 치유되지 못한 상태 그대로다. 이 앙금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역사의 소용돌이는 알 길이 없다.

미국이 겪고 있는 극심한 분열은 미국의 헌법, 특히 ‘권리 장전’을 알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헌법상 첫 수정조항은 표현과 언론, 종교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 권리가 포함돼 있다. 2번째 수정조항은 총기소지의 자유인데, 이 점 때문에 미국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온다.

1836년에 실제 독립을 선언하고 텍사스 공화국을 건설했던 텍사스주는 9년 만에 결국 미국의 28번째 주로 편입됐지만, 지금도 분리 독립에 있어서는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1847년에 멕시코와의 전쟁후에야 미국에 편입되면서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는 캘리포니아주에서도 극우 보수세력의 분리 독립을 희망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분열 위기에 놓인 국가를 통일하고,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링컨처럼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그런 위대한 리더가 이번 대선에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남부 보수 지지층의 말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메시아적 인물인가? 2020년 대선은 ‘흑백 갈등’이라는 고래싸움에 끼어있는 소수민족인 우리 한인들로서는 생사와 미래가 걸려있는 중대한 선거다. 어느 후보가 우리 한인사회와 미국 모두에게 적합한 인물인지 지금부터 면밀히 관찰해야 할 때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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