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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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혐오와 마주하기

2020-06-22 (월) 이은정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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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8일 미네소타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 데릭 쇼빈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지 거의 삼 주가 지났다.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기 전, 또 다른 두명의 흑인인 아흐머드 아버리와 브리오나 테일러가 무고하게 살해당했고, 며칠 전 레이샤드 브룩스라는 또 다른 흑인 청년이 경찰의 과도한 진압으로 생을 마쳤다. 미국 전역에서는 흑인을 향한 경찰의 폭력을 반대하고, 미국 역사에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는 구조적인 인종차별에 대해, 특히 반흑인감정(anti-Blackness)에 저항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나로 하여금 미국내 아시아인들이 어떻게 흑인 인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가를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인종차별 특히 반흑인감정은 한국 교민사회뿐만이 아닌, 아시안 계 미국인 공동체 안에서도 분명히 존재한다. 흑인들이 밀집해있는 거주 지역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그들이 감내하며 살아온 차별과 불평등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까지, 많은 이들이 다양한 종류의 내재화된 백인우월주의 사상들을 종종 사실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특히1992년도 LA 로드니 킹 사건을 경험한 우리 한국 교민들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로 인한 상처와 트라우마가 흑인 인권 신장에 있어 소극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구체적인 이유로 거론되기도 한다.

더욱더 개탄스러운 것은 아시아계 미국인 그룹이 소수자로서 어떻게 반흑인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소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반흑인감정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하는 점은 아시아인들을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개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열심히 일하고 순종적인 아시안의 이미지는 소위 주류 백인사회가 흑인들을 정반대로 낙인찍으면서 빚어진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결국,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개념은 우리의 문화와 인간 그 자체로서의 존엄성이 아닌, 백인우월주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회에 얼마만큼 공헌을 했느냐의 관점으로 붙여진 수식어인 셈이다.


미국 내 유색인종이자 소수자로서의 한국인이 일구어 낸 업적들은 우리가 빚어낸 역사이자 정체성의 일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 업적들이 미국 사회에서 시민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다른 유색인종의 소수자와의 필요 없는 경쟁에 의해서, 또 그 과정에서 그들을 더욱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과정을 통해서 생겨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들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흑인 인권 신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흑인 작가 토니 모리슨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제 글에 대해서 왜 백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지 않냐고 많은 비난을 받았었죠… 그리고는 비평가들은 흑인들이 진짜로 직면하게 될 문제에 대해 써야 될 거라는--곧 백인들을 의미하죠, 비난을 했어요… 마치 우리의 삶이 백인들의 관점에서 벗어나서는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다는 것 처럼요. 저는 제 글쓰기 삶의 전체를 백인들의 관점만이 결코 주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 저항 시위에서 파생된 폭력과 약탈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로 하여금 흑인들에 관한 또 다른 고정관념을 굳히고 있다면, 이 질문들을, 그리고 토니 모리슨의 말을 생각해보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소위 ‘주류사회’에서의 가치란 누구를 배제하고 누구의 삶을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일컫고 있는가? 누구의 얼굴과 몸이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인가? ‘주류사회’는 우리에게 누구를 혐오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리고 사회는, 이 혐오를 어떻게 지속해나가고 있는가?

<이은정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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