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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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겸손한 사람

2020-06-19 (금) 이혜은 (우리 앙상블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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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많은 수술을 받았다. 어느 날 나이 지긋한 분께 “제가 덜 절여진 배추와 같아서 이렇게 많이 아팠나 봅니다” 했더니 “너무 절여졌어. 그만 절여도 돼”라고 그러셨다. 김치는 배추가 알맞게 절여졌을 때 담가야 맛있다. 그런데 그렇게 아픈 세월을 많이 보내고도 겸손하지 못한 나를 보면 안쓰럽다.

겸손의 그리스어 어원은 ‘땅에서 멀리 올라가지 않음’이다. 즉 비유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으라는 말이다. 라틴어 어원도 사람(Human)과 같은 어원인 ‘땅’에서 왔다. 우리가 그렇게 땅을 밟고 다녀도 땅은 언제나 좋은 것으로 보답한다. 땅에 무언가를 심으면 생명이 자라난다. 그래서 겸손이 열매를 맺는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겸양도 그렇다. 겸양의 사전적 의미는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함’이다. 나는 운전하다가 ‘Yield (양보하시오)’ 사인을 보게 되면 ‘겸양’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Yield’에는 ‘양보’의 뜻 외에 ‘수확, 생산량, 보상, 이익배당’의 뜻이 있다. 양보하면 손해볼 것 같다는 생각과 정반대로 양보하면 확실한 소득과 보상이 있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 같다.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처음 뵙는 분인데 멀미를 하는 편이라 해서 자리를 양보했다. 그 작은 양보로 인해 지금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어 소중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큰딸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여인에게서 겸손함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겸손하게 접근하는 성숙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자신감, 아름다움이었다. 그 아름다움이 내게 빛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흙처럼 모든 것을 수용할 자신감이 가득한 그녀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히브리어로 하면 ‘흙’이다. 어느 날 우리도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삶이 유한한 줄 안다면 더욱 겸손해져야 할 것 같다. 게다가 겸손은 아름다움을 지속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땅에 발을 딛고 서는 능력에 감사할 때마다 겸손의 자세를 가다듬어 볼까? 시간이 지나도 고맙게 떠오르는 사람은 겸손의 아름다움을 전해준 사람이다. 나도 그 아름다운 대열에 서고 싶다.

<이혜은 (우리 앙상블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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