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반 아름이는 내 외손녀이다. 아름이는 산호세 남쪽, 모건힐의 집터가 넓은 전원주택에 산다. 1에이커의 대지에 온갖 꽃들이 가득한 정원과 아름이가 뛰어 노는 넓은 잔디밭이 있다. 얼마전에는 엄마 아빠가 아름이 전용 그네와 플레이 하우스도 만들어 주었다. 요즘은 아름이 엄마가 보내주는 사진과 비디오 클립으로 아름이의 커가는 모습을 본다. 코로나놈 때문에 생이별을 당한지 3개월이 넘었다. 코로나로 인한 강제 자가격리 전에는 매주 한번은 외갓집에 다녀갔다. 그러나 무증상 코로나균이 누구에게 붙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가 없다.
아름이 엄마가 짤막한 비디오 동영상을 보내왔다. 아름이가 화단가의 벤치에서 과자를 먹고 있다. 화단 속을 유심히 쳐다보던 아름이가 “Bee Hungry’하고 소리치며 먹고 있던 과자 봉지를 내밀었다. “안돼” 기겁한 엄마의 목소리다. 꿀벌의 바쁜 날개짓이 아름이에게는 배고픈 날개짓으로 보인 모양이다. 과자봉지를 내민 아름이의 흰손목이 시(詩)처럼 아름답다. 내 외손녀 아름이는 시인이 될 수도 있겠다.
서로 만날 수 없다보니 아내(외할머니)가 화상통화로 산토끼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내의 말로는 서너번 반복해서 불러 주었더니 금방 따라 한다고 했다. 믿기지가 않아서 아름이에게 산토끼를 불러 보라고 했다. 그러나 아름이는 가지고 놀던 장난감만 만지작 거릴뿐 내 요청은 들은체 하지도 않았다. 나도 노래를 하나 가르쳐주고 싶어 송아지 노래를 불러 주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전혀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게 장난감만 가지고 놀던 아름이가 말했다. ‘More’. 그래서 한번 더 불렀다. 아름이가 또 ‘More’ 그랬다. 또 불러 주었다. 네 번째는 조금 개사를 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아름이 닮았네” 그랬더니 아름이가 갑자기 장난감을 멈추더니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그리고 “엄마 닮았네”라고 말했다. 와, 아름이는 천재가 분명하다. 너무 놀라서 박수를 치며 ‘아름아 송아지 한번 불러봐’ 하고 요청했다. 그러나 아름이는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뿐 대꾸가 없다. 이제야 나는 알았다. 아이들은 딴짓 하며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있고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는 더 조심해 말하고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다.
아름이 엄마가 비디오 동영상을 보내왔다. 아름이네 거실에서 있던 음악발표회 였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음정, 박자, 가사 발음 모두 정확한 완창이었다. 내 외손녀 아름이는 송가인을 능가하는 명가수가 될수도 있겠다. 거기다 송가인보다 훨씬 예쁜 외모도 가졌으니 난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딸 셋을 낳아 기르고 공부시키고 모두 시집 보냈다. 막내는 유치원 빼고 학교 다닌 햇수만 23년이라며 학위증서 사진을 가족 대화방에 올렸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동안 아버지 노릇을 했는데 이렇듯 아름이를 보듯이 내 아이들은 귀여워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아이들을 기르는 것은 철저하게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후회스럽다. 아이들이 자랄 때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냈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도 별로 없다. 얼마전 부터 이러한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하여 시집간 딸들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애정표현을 해 보려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어색해지기만 하여 제대로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지 못했다.
아마도 외손녀 아름이나, 산라몬에 사는 외손자 한결이에게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것은 딸들에게 미안해서 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딸들이 어릴 때 더 많이 사랑 표현을 못했던 빚진 사랑의 심정이 많다. 손자, 손녀를 많이 귀여워하므로 딸들에게도 옛날에 표현하지 못했던 아빠의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감추어진 속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내마음 나도 모르지만 손주들은 귀엽고 딸들에게는 아직 갚지 못한 빚쟁이 심정이다.
사랑의 옛 우리말 명사는 ‘다솜’ 이라고 한다. 또 동사형의 사랑하다 표현은 ‘괴다’ 혹은 ‘고이다’라고 한다. 내가 지금에 와서야 딸들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는것은 아마 다솜이나 괴다라는 말처럼 들릴게다. 도대체 해보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니 나도 이해 못하는 ‘다솜’과 ‘괴다’를 말하는것 같다. 옛우리말의 ‘괴다’는 침이 입안에 고이듯 자연스레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웃음짓는 마음이 고이는것을 말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란다.
사랑은 억지로 만들어 내는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선 분명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시간을 투자 해야 한다. 사랑은 표현을 필수로 한다. 때로는 돈을 쓰는것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가 나에게 준 하나의 좋은면은 떨어져 있음으로 아름이와 한결이를 더욱 그리워하게 한 것이다. 내 다솜 아름아, 내 다솜 한결아, 까르르 웃는 너희 모습이 내눈에 고인다. 콩콩 뛰노는 너희 발자국 소리를 내 가슴으로 괸다.
<
황용식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