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다보니 밖으로 나오기가 주저된다. 근육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길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을 보면 멀리서도 반사적으로 거리 유지를 위한 행동을 취한다. 미소 교환은 없어진 지 오래다. 미소 근육의 소실이 걱정된다. 바보처럼 혼자 웃어볼까?
미래학자들은 변화를 예견하고, 준비하고, 순응하라고 한다.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코로나19의 영향은 향후 수년 혹은 수십 년간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걸어가다 청아한 새소리를 들었다. 경쾌하게 날아 나뭇가지에 잠깐씩 앉는 새들을 보니 마음이 풀렸다. 평상심을 다시 찾았다. 더욱 고마운 것은 내가 마음을 낮추고 새소리에 귀를 열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상대방이 말할 때 나의 생각은 내려놓고 겸손한 태도로 반응해야지.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더할 것은 더하고, 아마 뺄 것이 많겠지.
나는 이것을 ‘겸손한 경청’이라 부르고 싶다.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오래 전에 ‘액티브 리스닝(Active Listening)’란 말을 알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가’라고 말해도 ‘나’라고 들으면 ‘나’다.
미국에서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양로원에서 일할 때다. 매일 노인들이 늙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대변과 소변의 싸움이기도 했다. 이 싸움은 감각의 노화가 원인이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이 노화에 따라 감소한다. 특히 청력감퇴는 서서히 일어난다. 이로 인해 대화할 때 분노가 표출될 수 있다. 후각, 촉각, 미각은 불편해도 정서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에 움츠러들지 말고 듣는 근육을 키워 감각을 발달시켜 보아야겠다. 겸손한 경청을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열린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재산이라고 했던 마틴 부버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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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은 / 우리 앙상블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