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중에는 역사를 바꾼 사진들이 있다. 1989년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홀로 탱크 행렬을 막아선 한 남자. 이른바 ‘탱크 맨’ 사진은 지금도 중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
베트남전 때는 미군의 네이팜 탄 공격을 받은 소녀가 벌거벗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울부짖는 사진, 베트콩 용의자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즉결처분하는 사진 등이 전쟁의 참혹성과 잔인함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꼽힌다. 스페인 내전 당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민병대원의 사진, 나가사키 원폭투하 사진, 인간의 달 착륙 사진 등은 그 한 장으로 인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인쇄매체가 성황을 누릴 때는 연말이면 사진전문 매체인 ‘라이프’지의 올해의 사진 모음집을 받아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한 권의 책으로 지난 1년이 읽혀졌다. 2003년 발행된 후 2011년 개정판이 나온 라이프지의 ‘세계를 바꾼 100대 사진’은 지금도 명품 사진집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동영상이 사진의 많은 자리를 대체했다. 동영상 하나로 사회가 요동치고 역사가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미니애폴리스의 경찰 살인 영상이 아닐까 한다.
17세 흑인소녀가 찍은 10분6초짜리 이 동영상 하나로 미국이 뒤집어졌다. 이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살인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은 숨을 쉬게 해달라고 애원하다 고요히 숨이 끊어지는 과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메모리얼 데이였던 지난달 25일 저녁, 다닐라 프레이저는 사촌과 함께 이웃가게에 가던 길이었다. 경찰이 흑인 남성을 체포하던 중이었다. 가지고 있던 아이폰을 꺼냈다. 2배 줌으로 확대해 촬영하기 시작했다. 백인 경찰은 무릎으로 조지 플로이의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다. “마마, 마마” 어린아이처럼 엄마도 불렀다. 밑에 깔린 플로이드가 미동도 하지 않은 지 오래 됐지만 경찰은 꼼짝하지 않았다. 무관심하게 보일 정도였다. 응급요원이 와서 등을 두드릴 때까지 목에서 무릎을 떼지 않았다.
이 동영상은 한 번도 끊이지 않은 채 촬영됐다. 중간에 몇 초라도 끊겼다면 가짜뉴스, 조작 시비가 일었을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동영상은 다음날 새벽 2시26분 다닐라의 페이스북에 올려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봤고, 연방수사국은 이 영상을 증거자료로 가져갔다.
대표적인 역사적 동영상들은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장면을 담은 것과 1991년 로드니 킹 구타사건을 담은 동영상 등이 꼽힌다. 둘다 백인 남성들이 촬영한 것이다. 케네디 암살 동영상으로는 지금까지 1,600만달러를 벌었고, 킹 구타 영상에는 아직 저작권이 걸려있다.
미니애폴리스 동영상의 저작권자인 다닐라는 어떨까.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된 이 소녀는 지금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상태. 근처에 살고 있던 가족들은 밀려드는 카메라를 피해 거처를 옮겨야 했다. 이런 그녀를 돕기 위한 고펀드미 캠페인에서는 이틀 만에 5만여달러가 모금됐다고 한다.
참, 요즘 또 하나 유명세를 탄 사진 한 장, 백악관 건너편 교회에서 성경을 들고 찍은 대통령의 사진은 어떻게 연출된 걸까. 딸 이방카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성경도 남편을 따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카의 1,540달러짜리 핸드백에서 나왔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