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통신 기자가 시위현장에서 찍은 사진에 나온 흑인 소년의 피켓 ‘다음은 나다’(Am I next) 문구가 매우 인상적이다. 언제든지 다음번 조지 플로이드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 비극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CBS의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는 얼마전 숨 쉬는 사람의 소리와 함께 ‘나는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 8분46초짜리 비디오 영상을 내보냈다. 각 주 여러 도시의 시위대는 조지 플로이드가 숨 쉴 수 없었던 공포를 공유하기 위해 거리에 뛰쳐나와 그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행진하고 있다.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과 법의 불평등을 말하고 있다.
미국의 독립은 폭력으로 승리했다. 남북 전쟁 역시 폭력으로 승리했다. 이것이 미국의 역사이다. 그러나 독립 후 자유를 얻기 위한 힘과 폭력의 정당성은 오랫동안 백인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으며 흑인들에게는 명백히 부인되었다.
평화시위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폭력으로 비화되고 산발적 방화와 약탈이 진행되기도 했다.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폭력과 파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좌절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정치인들은 폭력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권리가 없다. 첫째로 정치인들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삼는 모순 때문이다. 시위대의 방화와 약탈이 전쟁보다 더 사악한 범죄일 수 없다.
둘째로 정치인들은 빈곤한 지역과 백인이 아닌 지역사회의 모든 사회문제는 경찰에게 넘겨 관리했다. 학교는 작동하지 않고 마약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젊은이들을 절망의 순환에 빠지도록 방치했다.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감옥에만 가두어 놓았다. 경찰은 더욱 무장되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도록 압박해야 한다. 공공안전 문제를 직접 목표로 하는 주택, 고용 및 건강관리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지역사회 기반의 반 폭력 프로그램, 재생할 수 있는 사법 프로그램, 외상 서비스, 카운슬러 컨설팅 등 간접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현재 도시 전체 예산의 30%인 4,500만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시 정부는 경찰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지역사회 건강 및 안전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해야 하며 진정으로 상처에 귀를 기울여 그들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
정치적 압력과 시위행진이 효과적이지 않을 때 실제 변화를 강요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슬픈 사실은 이러한 폭동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해 두려움과 분열의 정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정략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1960년대의 오래된 대본에 충실한다면 이 위기에서 강인함을 연기함으로써 이점을 추구할 것이다. 체계적인 인종차별과 경찰의 잔인함보다 화염과 연기에 더 놀라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질서를 정복하는 수비수로 자신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브라운 대학교 ‘전쟁비용 프로젝트’의 2020년 1월 보고서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시리아 전쟁 비용으로 총 6조4억달러 이상을 소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연방정부의 부채는 미국 납세자 평균 8,000달러, 총 2조달러에 누적된 이자만 925억달러에 달한다. 9/11 이후 모든 전쟁의 당사국은 전쟁 폭력으로 인해 민간인 35만명 포함해 최소 80만 명이 사망했으며 2,100만명의 전쟁 난민과 이재민이 발생했다. 폭력이 해답이 아니라면서 사람을 학살하고 왜 그토록 많은 세금을 낭비하며 돈까지 빌려가며 전쟁을 벌일까.
조지 플로이드를 죽인 체계적인 인종차별주의는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영혼을 빼앗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죽이고 있다. 한때 목화밭 면을 고른 손이 식탁에서 함께 합쳐졌을 때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을 때, 여성이 투표권을 얻었을 때, 주당 40시간의 노동 보장과 최저 임금을 얻었을 때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그들의 삶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그들을 속였다. 미국이 할 일은 전쟁이 아니라 그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포용적인 경제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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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