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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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바꿔놓은 것들

2020-06-01 (월)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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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 락다운은 이제 3개월 째 계속되어 간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하지 않아 재택근무도 더 이상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콘서트나 문화생활 못 하는 정도 외에는 크게 달라진 바가 없는 듯하다. 가장 달라진 양상 중 하나를 꼽자면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글로벌화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출장이 정말 잦아졌고,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과 기회가 많아지고, 특히 모험심 강하고 영어구사가 가능해진 젊은 층들이 자유롭게 훌쩍 떠날 수 있는 외국이란 더 이상 낯설고 두려운 곳이 아닌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곳이 되었다. 미국, 일본,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축에도 못 끼게 되고 점점 더 남들이 가보지 않은 이색적인 나라에 가보는 것이 어느새 “쿨”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셜미디어에 뜨는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 누구는 스위스 알프스에서 하이킹을 하고 있다든지, 누구는 쿠바에서 희한한 선글라스를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든지, 어떤 친구는 출장 중 두바이의 멋진 초고층빌딩을 배경으로 외국 동료들과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밝아 보인다.


어느 순간 해외 출장이나 여행이 개개인의 능력과 라이프스타일을 판단할 수 있는 침묵의 척도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심하다고 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럭셔리하고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보이기 위해 개인비행기를 타고 샴페인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찍어 올린다던지, 지중해 어딘가에서 요트를 타고 즐기는 모습을 찍어 올린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런 개인비행기나 요트가 자신의 것이 아니고 이런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여용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게 개인 삶을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 되다 보니 여행이나 출장 중 그 순간을 즐기는 것보다는 그 순간을 ‘포착’해오는 것에 더 집착할 때가 있다.

그런데 요즘 전세계의 락다운으로 인해 아무도 해외여행을 못 가니 이러한 사진들과 광경들은 어느 소셜미디어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자연히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들도 없어지고 그런 능력과 라이프스타일의 척도가 희미해져간다. 그렇게 잦은 출장을 다니고 해외여행을 다니던 화려하고 ‘잘 나가던’ 사람들도 이제는 다 제자리에 있다. 이번 팬데믹이 그동안 정신없이 지내던 사람들을 꼭 원래 있어야할 자리에 다 되돌려놓은 듯하다.

나도 비행기를 타고 예전처럼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하고도 싶지만 잦은 출장과 여행으로 인해 자주 피로했던 심신이 안정이 되고 내 자신을 오히려 찾게 되는 것 같아 더욱 평온하다. 아무런 시차를 느끼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 그동안 몰랐던 우리나라 곳곳을 구경하기도 하고, 몽롱하지 않은 맑은 정신 속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으니 멀리 떠났을 때를 무조건 ‘캡쳐’하려는 마음보다는 이 순간을 즐기려는 느긋함이 생긴다.

이렇게 오래 갈 거라 상상도 못했던 이 전례 없던 팬데믹이 우리 모두에게 답답한 시기만이 아닌 우리를 리셋모드로 해주는 시기였으면 한다. 꼭 얼음-땡 놀이 중 “얼음” 같이 다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시기지만 언젠가 또 다시 “땡” 하면 분주하게 돌아가야할 현실 앞에서는 이런 시기를 겪음으로써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삶을 접근할 수 있는 지혜와 여유가 생기길 기대해 본다.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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