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미친 파파야 샐러드 일기
2020-05-28 (목) 12:00:00
이현주 (주부)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깨닫게 된 사실이다. 작년 오늘, 나는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 있었다. 그곳에서 남편과 2주 정도 휴가를 보냈던 것이다. 사진 속의 우리는 항상 손에 맥주나 칵테일을 들고 있고, 아름다운 해변과 이국적인 식물들에 둘러싸여 웃고 있었다. 그걸 보니, 이번 상반기에 Covid-19으로 인해 환불 받아야만 했던 비행기 티켓들이 생각나 몹시 우울해졌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인내심이 시험 받는 순간은 거의 매일 찾아온다. 좋지 않은 상황을 만나면 쉽게 비관적이 되는 나의 저주받은 상상력이 최악의 경우만을 시뮬레이션하기 때문이다. 요즘 내 마음속 작은 지옥에 들어앉은 가장 성가신 상상은, 테이크아웃 음식을 다루는 요리사 중 한 명이 내가 좋아하는 파파야 샐러드 위에 기침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바이러스에 오염된 파파야 샐러드를 먹고 기침을 시작한다.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지만, 의료 붕괴로 인해 구급차가 오지 않아서 사망한다. 괘씸한 남편은 일년 반 정도 슬퍼하다가, 젊고 예쁜 새 여자친구와 재혼한다. 그리고 삼십 년 쯤 후, 두 번째 아내와 하와이에 놀러가서 “나의 첫 아내는 식탐 때문에 죽었지” 따위의 말을 할 지도 모른다. 그건 너무 억울하기 때문에 삼시 세끼를 모두 만들어 먹고 있다. 남편은 내가 약간 미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아주 약간이라도 미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조금씩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몹시 비관적인 타입인 나와 달리, 한없이 밝고 낙천적인 방향으로 정신을 잃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중 대표 주자는 워싱턴 DC에 살고 있는데, 그의 증상들은 나의 미친 파파야 샐러드 가설과 비교해 보아도 과학적 근거가 현저히 떨어진다. 예를 들어, 고작 몇 달 전 발견된 신종 바이러스의 백신이 연내 생산되고, 사람들이 아무 거부감 없이 접종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 귀여운 일이다.
1955년에 처음 만들어진 소아마비 백신이 65년째 치명적 부작용들을 완화해가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라. 어쩌면 살균제를 인체에 주입할 방법을 연구해보면 어떨까 했던 그의 제안도 조크가 아닌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인내가 길어지니 고통스럽고, 고통이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 이미 늦은 사람은 어쩔 수 없으니, 우리라도 정신 차리고 살자.
<이현주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