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이 듦에 대하여

2020-05-26 (화)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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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크게 다쳤다. 혼자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가 넘어져 기절해있는 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견해 응급차를 타고 근처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화로 전해온 소방대원에게 어디 병원이냐고 지금 가겠다고 하니 코로나 19 때문에 현재 병원에 환자 외에는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하고 전화가 끊겼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아침에 자전거 타러 간 아빠가 길바닥에 의식도 없이 쓰러져 있었다고 하는데 직접 가서 상태를 볼 수도 없으니 다음 전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천년만년같이 느껴졌다. 서너 시간 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그때서야 아빠와 직접 통화가 가능했다.

화상통화로 본 아빠는 얼굴이 다 까지고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왼쪽 손목엔 금이 가서 깁스를 했다. 그것도 원래 수술을 해서 플레이트를 덧대 뼈가 바로 붙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아빠가 한사코 거부해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깁스로 자연히 뼈가 붙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에 한동안 의식이 없어서 뇌에 손상이 갔을까봐 이것저것 추가 검사를 더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우려했던 뇌출혈은 없었고 부러진 줄 알았던 다리도 외관상 타박상이 심했지만 뼈는 다행히 괜찮다고 했다. 아빠는 차가운 병실에서 혼자 나흘을 지내다 돌아왔다.

병원에서 주는 양식만 드시다가 집에서 따뜻한 집밥을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는 아빠는 걱정 어린 눈을 한 우리들 앞에서 애써 더 웃어보였다.

병원에서 식사 때마다 간호사가 예쁜 손 편지를 주더라며 챙겨온 카드들을 보여주셨는데 자세히 보니 손 편지가 아니라 프린트된 카드들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의학용어에 말도 잘 안 통했을 병원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카드들이 다 프린트 물이었다니 카드를 쥐어든 나도 아빠도 서로를 보며 웃었다.

아들, 딸들은 이 시국에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운동을 핑계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다쳐 돌아온 아빠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자식이 한둘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다섯 명의 자식을 둔 아빠는 다섯 명이 해대는 잔소리에 귀가 좀 아팠을 것이다.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아빠는 당분간은 집에서 쉬면서 몸조심하겠다고 했지만 며칠 있으면 또 좀이 쑤셔 깁스를 한 팔을 이끌고 사부작사부작 소일거리를 찾아 헤맬 게 뻔하다.

어제는 엄마 아빠와 함께 앉아 밥을 먹으며 나도 나이를 먹어보니까 나이가 들수록 걱정거리가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내 걱정만 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 제 부모도 걱정해야 하고 배우자도 걱정해야 하고 이제 뱃속에 있는 내 자식도 걱정하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엄마는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며 웃었다.

나보다 곱절은 나이가 많은 엄마 아빠는 나보다 두배의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만 많아지는 것은 조금 우울한 처사이다. 걱정만큼 기쁨도 배가 될 수 있는 나이듦이라면 조금 덜 억울할 것 같은데 말이다.

엄마 아빠의 수많은 걱정거리 중 하나인 나라도 오늘은 조금 기쁨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오늘도 목구멍까지 올라온 잔소리를 다시 삼키며 엄마 집에 갈 채비를 한다. 뱃속에 든 우리 딸도 엄마 마음을 눈치 챘는지 나를 쿡쿡 찌르며 응원해준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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