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황제의 식탁 (King’s Table)
2020-05-20 (수) 12:00:00
엘렌 홍 (에스닉미디어 대외언론 담당자)
“미국 연방재난관리청에 마스크 200만장을 긴급 지원해준 청와대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동맹과 우정은 70년 전 만큼 중요하고 굳건합니다.” 2018년 트럼트 대통령에 의해 한국에 부임한 해리 해리스 대사가 한글과 영어로 한국시간 5월 11일 올린 트윗이다.
지금 미국 언론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한국이 골드 스탠다드라며, 전 세계에서 꼭 찝어서 한국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처를 표준으로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말로 적당한 표현은 반전, 결국 반전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반전이 있기까지는 거의 1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905년 9월 20일, 당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맏딸, 앨리스는 한국의 마지막 왕, 고종의 오찬에 초대되었다. 고종은 이미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목적에 희생양이 되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한국인다운 후한 인심을 베푼 것이다. 왕은 외교를 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고, 이를 모두 알고 있던 엘리스는 다른 나라들 방문 중에 그냥 서울을 끼어준 셈이다. 고종은 자신의 왕자까지 데리고 나와 그녀를 미국 공주로 대접했고, 자신과 순종의 사진들과 오찬에 쓰여진 이쁜 그릇들까지 바리바리 선물을 챙겨 보냈다.
그러나 앨리스의 자서전(혼잡의 시간들, 1934년)에는 고종이 키가 작다는 둥, 팔을 내밀어 주지도 않고 좁은 계단을 통해 냄새나는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는 둥 비하했다. 더욱이 고종과 순종이 멍하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뿐만 아니라 승마복으로 나타나서 시가를 피우며 명성황후의 능을 지키는 수호상 위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 무례를 저질렀다. 그리고 두달 후 미국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우리는 그 어떤 민족보다 더 자존심이 강하다. 마야 안젤루라는 미국 시인이 남긴 명언이 늘 생각난다. “그들의 얼굴이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어떻게 느끼게 해줬는지는 영원히 기억한다.” 우리는 115년 전부터 우리에게 상처준 미국을 기억한다. 그러나 전세계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여전히 바리바리 싸서 돕고 있다. 받는 이가 감사해 할 지, 뒤에서 욕할 지는 중요하지 않다. 맘이 후하고 순진한 고종의 자손들이기에 우린 115년 후의 분단 아래서도 씩씩하게 또 식탁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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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홍 (에스닉미디어 대외언론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