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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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020-05-17 (일) 이세희 / Lee & Asso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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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먼저 나무가 존재했다. 나무의 운명은 처음 뿌리 내린 곳에서 줄곳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무의 집합체인 숲 속에서 인류는 삶을 시작했다. 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 먹으며, 나무가 제공하는 그늘 밑에서 살았다. 맹수들의 공격을 피해 나무 위에서 자기도 했고, 땔감이 필요하면 나무 가지를 꺾어 쓰기도 하였다. 나무가 인간을 위해 쓰여지던 것은 인류 초기의 일만은 아니였다. 요즘도 사람들은 목재로 지어진 집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를 쓰며 살다가, 마지막엔 나무로 짜여진 관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나무는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나무는 그 어떤 감사함도 인간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그 희생의 운명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갈 뿐이다. 비 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나무는 제 속살에 인고의 세월을 쌓는다. 그래서인지 나무는 조용하고 슬픈 자태를 가졌다.
사람들(人)은 나무(木)에서 휴식을 찾는다. ‘쉼’을 뜻하는 ‘휴식’의 첫 글자인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나무 곁에만 가면 평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인간은 그 이유로 휴양림도 만들고 수목원도 만든다. 나무들이 가득한 숲 속에서 기분이 좋아지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심리적인 이유만이 아니다. 숲 속에서 시원한 특유의 향이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는 이유는, 나무가 발산하는 ‘피톤치드'라는 휘발성 물질 때문이다.

피톤치드는 ‘식물'이라는 뜻의 ‘피톤'과, ‘죽이다'라는 뜻의 ‘치드'가 합쳐진 말이다. 나무가 해충이나 병원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항생물질의 일종이다.
나는 오늘도 숲 속을 걷는다. 걸으며 눈을 들어 하늘로 솟아오른 자작나무, 편백나무 전나무들을 쳐다본다. 여러 모양의 형태중에서 특히 두 팔을 벌려 기도하는 모습의 나무가 나의 눈길을 끈다. 오늘은 저 자작나무가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 혹시 저 자작나무도 지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코로나 19가 빨리 종식되어 주길 기도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강변을 걸으며 이렇게 오묘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걷는 강변 옆으로 도열해 있는 온갖 나무들에게도 감사의 눈빛을 보낸다. 기쁨으로 흐르는 강물 반갑게 인사하는 새들의 지저귐, 따사로운 햇빛, 나날이 새로워지는 신록….
지금 우리가 처한 매우 지난한 상황속에서도,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지천이다. 오늘도 나무와 숲은 우리를 부른다!

<이세희 / Lee & Asso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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