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굴을 원도 없이 먹어 본 적이 있다. 보통 식당에서 굴을 사 먹을 땐 가격이 제법 나가 많이 먹질 못한다. 그냥 에피타이저로 감칠 날 정도만 주문할 뿐이다.
그런데 굴을 많이 먹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이었다. 현재 버지니아 바닷가의 한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내가 아는 한인 목사가 있다.
그 교회의 교인 중 굴을 양식해 식당에 납품하는 사람이 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모든 식당이 문을 닫게 되자 굴을 납품할 길이 막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교인을 돕기 위해 이 목사가 내가 거주하는 페어팩스 카운티 지역에서 과거에 알던 사람들에게 굴을 팔아 준 것이었다.
신선도와 저렴한 가격이 보장 될 뿐 아니라 교인을 위해 여러 시간 직접 운전을 마다치 않는 목사님을 돕기 위해서라도 나도 굴 팔아 주기에 참여했다. 그리고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흘 간 연속 굴을 배 터지게 먹어 보는 횡재를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그 굴 중에 일부는 요즈음 지나칠 정도로 장기간 자가격리에 들어간 아버지에게 전으로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어설프게 손가락을 다쳐가며 굴을 까서 전을 부쳐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집으로 찾아 오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다. 이미 자가격리가 한 달이나 되었는데도 한 달 정도 더 하시겠다고 한다. 한 번 결정하면 워낙 고집이 세셔서 다른 사람 얘기는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로서는 실망스럽지만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서 나의 페친 중 한 명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습이 담긴 짧은 비디오 클립을 볼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성인이었는데 배우는 학생들의 모습도 진지했지만 가르치는 선생님의 교수법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연락해 클래스 참관을 허락 받았다. 물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수업은 온라인 줌 (Zoom) 미팅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수업 중 학생들에게 대답하라고 주어진 질문 중에 ‘혹시 최근에 실망한 것이 있느냐’라는 게 있었다. 이에 대체적으로 조용히 참관만 하던 내가 굴전 만들던 얘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나름대로 천천히 굴까기부터 시작해서 굴전을 만들고 자가격리 중인 아버지에게 연락했던 얘기 등을 간단하게 했다.
내 얘기가 다 끝나자 가르치던 선생님이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 하기 위해 물어 보았다. “굴이 뭔지 다 알죠?” 이에 한 학생이 대답했다. “예, ‘꿀’, ‘honey’ 요.” 그러자 다른 학생 한 명이 끼어 들었다. “까는 것이니 ‘orange’, ‘귤’이 맞죠?”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웃을 순 없었다. 우선 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바쁜 가운데에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기울이는 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수고는 소중했기 때문이다.
학생들 가운데에는 과거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다녀 왔다는 백인 여자, 태권도와 합기도에 푹 빠져 있다는 백인 남자, 한국 드라마 팬이라며 세 애들을 키우는 일본인 여자도 있고 미국에 온지 오래 되어 한국어를 좀 더 배울 필요를 느낀다는 한인 남자와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도 있었다. 이런 학생들을 아무런 보수 없이 자원 봉사해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고마웠다.
그런데 지난 주의 나의 칼럼 제목이었던 ‘도토리 묵’에 대해 쓰기 전에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두 명의 한인 직원들에게 지나치면서 다음 칼럼은 도토리 묵에 대해 “씁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둘 다 고개를 갸우뚱 하며 한 직원은 왜 도토리 묵을 “쏜다” 고 하지 했고, 또 다른 한 직원은 왜 도토리 묵을 “쑤나” 했다. 역시 내 발음에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 아무래도 나도 앞으로 계속 내 페북 친구가 가르치는 한국어 수업에 참여해 발음 교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수업에 관심 있는 사람은 www.meetup.com/novaKorean 사이트에 방문해 보기 바란다. 수준별 수업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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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