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황 용식이다. 공부는 못했지만 불의나 범죄행위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직진남이다. 말보다는 마음이 먼저, 마음보다는 몸이 먼저 튕겨져 나가는 그런 남자다. 고등학교 1학년때 은행에 갔다가 권총 강도를 보고 맨손으로 싸워 잡다가 강도의 이빨을 부러뜨려 엄마가 강도의 이빨을 배상해야 했다. 군복무 중 휴가 나왔을 때는 오토바이 도둑을 잡았다. 택시 운전사로 일할 때는 창 밖으로 보이는 소매치기를 따라가 잡았고, 택배 기사로 일할 때는 살인강도를 잡았다. 수많은 시민 표창장으로 경찰에 특채됐으나, 뻔뻔한 애인 폭행범을 많은 군중들이 보는 인터뷰 현장에서 줘 패 버려 충청도 옹산으로 좌천되었다.
거기서 그녀를 만났다. 셜록홈즈처럼 멋있는 경찰이 되기 위해 서점에 갔다가 첫눈에 3초만에 반해버린 그녀를 만났다. 얼떨결에 맞부딪친 그녀에게 그의 첫마디는 ‘총각입니다. 저요. 진짜 총각입니다’였다. 그녀는 다이애나비보다 예뻤고, 좌우지간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
그녀에게 그는 별 미친놈, 별 이상한 놈, 아무튼 이상한 놈이었다. 처음 본 자기를 이례적으로 예쁘다고 하며 지켜준다고 어디든 따라다녔다. 그녀는 일곱 살 때 엄마에게 버림받은 고아였고, 국민학교 1학년 아들 필구가 있는 미혼모이고, 옹산 게장 골목 끝에 있는 술집 까멜리아 (동백)의 여사장이다. 게장 골목의 여자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고 남자들에게는 수도권 냄새를 확 풍기는 옹산의 다이애나였다. 그러나 그녀는 정서적으로 모든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엄마는 커녕 이모나 할머니도 없는 고아였고,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재수없는 아이, 재수없는 여자로 불렸다. 그녀가 생각해도 자신은 재수없는 여자였다. 그러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직업의 여성도 그런 여자도 아닌 그냥 술장사를 하고 어린 아들을 키우는 여자일 뿐이다. 그녀의 이름은 오 동백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그냥 동백이라고 부른다. 동백의 아들 필구는 사람들에게 자기 엄마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소리친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 동백이…이렇게 부른다.
어느 날 내 이름 황 용식을 컴퓨터에 넣어 보았다. 깜짝 놀랐다. 황 용식에 관한 수많은 기사와 글들이 있었다. 황용식 촌므파탈, 황용식의 사랑법, 황용식 명대사 ‘…뭐여, 이거시.’ 작년 연말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남자 주인공 황 용식에 관한 온갖 찬사들이었다. 도대체 무슨 드라마길래 이렇게 황 용식에 대한 글들이 많을까? 궁금해서 드라마를 보았다. 동백꽃 필 무렵은 참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재미있을 뿐 아니라 작품 속에 분명한 메세지가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드라마 속의 몇 가지 사실이 나와 비슷한 부분도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주인공 이름 황 용식이 나와 같을 뿐 아니라 드라마 속의 가상의 도시 옹산도 충청도에 있고 대사의 어투에 충청도 사투리가 많아 충청도 사람인 내겐 더욱 친밀하게 느껴졌다. 드라마 속에서 유일하게 실지명이 거론되는 보은은 나의 고향이다. 그리고 나의 오클랜드 사무실은 건물 양 옆으로 거의 20여그루의 동백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주인공 이름이 극중 그렇게 많이 반복되어 나오는 드라마는 처음 보았다. 황 용식을 연기하는 강하늘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드라마를 더욱 실감나게 했다. 특히 그의 조금 촌스런 말투는 사실 매사에 조금 촌스런 나를 더욱 연상시켰다.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는 작년 KBS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았고 연말 연기 대상에서는 대상을 비롯한 12개의 상을 수상했다.
그러면 왜 주인공 황 용식은 뭇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을까? 그는 우직하고 충실하고 한결같은 사람이다. 그는 한 여자에 순식간에 반해 버렸고, 그 반함은 그 후에 드러나는 상대의 직업이나, 환경, 형편에 따라 결코 변하지 않았다. 용식의 동백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 무대뽀, 무제한적인 사랑이다. 용식의 이런 사랑법은 평생을 웅크리고 살아온 동백에게는 낯설고 비현실적 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고아, 미혼모, 술집 여자 사장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 속에서 용식은 “동백씨 이동네서요, 제일루 쎄구유, 젤루 강하구, 젤루 훌륭하고, 젤루 장해요”라고 말해 주었다. 동백은 지금껏 받아보지 못한 칭찬과 느껴보지 못한 인정을 받음으로 자신도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용식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동백의 아들 필구의 마음에도 통했다. 엄마에게 다가오는 모든 남자들을 질색했던 필구도 “아저씨는 옹산에 있는 한 사람 우리 편이잖아요, 우리 엄마 좀 도와줘요”라며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말은 너무나 중요하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한마디의 칭찬은 듣는 사람에게 큰 기쁨과 용기와 또 한번 더 칭찬들을 일을 하고싶게끔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아무리 마음속 깊이 사랑하여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죽고 만다. 할 수 있는 만큼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아낌없이 표현하자.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구의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우리의 말속에 온기가 있으면 사람의 언 마음을 녹일 수 있다. 세상엔 가슴 시린 사람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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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식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