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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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후각(ol·fac·to·ry)

2020-05-12 (화) 엘렌 홍(에스닉미디어 대외언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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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의사 앞에 앉아서 울먹이며 말한다. “제 후각 기능을 제거해 주세요.” 의사는 기가 막혀, “왜 그런…?” 여자는 터지는 감정을 참으며, “그 사람의 냄새만 맡으면 미치겠어요!” 실연당한 여자가 말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나에게도 몇 년 동안 지우고 싶은 냄새가 있었다. 후각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몇 가지 생각나는 냄새가 있을 것이다. 나쁜 기억이라면 빨리 잊고 싶고, 좋은 기억이라면 그 냄새를 다시 찾는다. 최근에 히트친 영화에도 나오는, 우리의 뇌를 강타하는, 소름끼치게 너무도 잘 아는, 그 냄새.

냄새에 대한 마음 아픈 사례들은 수없이 많지 않을까? 예전에 어떤 회사에 너무나 냄새에 예민해서 옆에 앉은 동료들에게 향수와 로션 등을 못쓰게 하며 갑질을 하는 여자가 있었다. 하루는 내가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고 있는데 큰 목소리로 스컹크 냄새가 난다며 냄새의 진원지를 찾았다. 결국은 회사 사장까지 데리고 와서 내가 먹던 음식을 킁킁 맡게 했다. 누군가 청국장을 끓여 먹다 이웃집이 부른 경찰이 나타났다는 말이 생각났다. 네바다주 깡시골로 80년대 후반에 이민와서 고등학교에 간 친구는 아이들이 마늘 냄새 난다고 불평하여 학교에서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이 모두 진정 냄새가 싫었던 걸까, 아님 사람이 싫었던 걸까?


어릴 때 한국에서 맡아본 노린재 해충 냄새가 너무 강하게 남아서 아직도 실란트로(Cilantro) 향이 싫다. 그렇다고 이걸 즐겨 먹는 사람들을 천대하거나 미워할 일인가? 그 당시 할아버지가 일요일마다 배달시켜서 드시던 선지국 냄새도 생생하다. 선지 냄새가 너무 싫어서 휴지로 코를 막고 밥을 아주 맛없게 먹은 기억이 있다. 그땐 할아버지가 너무나 미웠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배고플 때 부엌에서 저녁을 만들면 솔솔 나는 냄새에 침이 솟는다.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음식을 즐길 수 없으므로 맛을 완전히 만끽할 수 없다.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깻잎, 민트, 생강, 마늘, 베이즐, 레몬, 모두 건강을 위해 먹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향들이 너무 인생을 살맛나게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깻잎은 어릴 때 먹던 것처럼 향이 가득하지 않아서 직접 키워보기로 했다. 빨리 키워서 어릴 때 먹던 그 깻잎향으로 나쁜 기억의 냄새는 싹 씻어버려야겠다. 다양한 냄새를 알고 있어 행복하다. 후각은 선물이다.

<엘렌 홍(에스닉미디어 대외언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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