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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5월의 단상

2020-05-06 (수) 방무심 / 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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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계절이자 가정의 달인 5월은 가정과 관련된 행사가 많고 가정의달이라고 한다. 전에는 어머니 날이라고 하여 더 애틋한 감정이 들었는데 지금은 어버이날이라고 한다.

6.25전쟁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다섯 살인 형과 두 살이었던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따듯한 보살핌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새어머니가 오셨지만, 우리는 성장 할 때까지 조부모님과 따로 살았다. 가부장제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했던 새어머니는 우리 형제와 함께 하지 못한 봉건적 시대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할머니가 혼자 되신 후에 형님이 군대에 가게 되었고 2년 후에는 나도 징집 영장이 나와서 머리를 빡빡 깎고 훈련소로 향했다. 때는 1969년 5월 초로 생각되는데 홀로 남겨진 할머니 곁을 떠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입대하자마자 다음 날 어깨에다 주사 한 방씩 맞고 입고 들어간 옷은 전부 벗어 주소를 적어 봉투에 제출하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 맞은 주사는 여자친구가 생각나지 않게 하는 주사라고 들었다. 훈련소에서는 옷은 물론 신발까지 집으로 부쳐 주었고 보름쯤 되었을 때 할머니로부터 소포를 받았다는 답장을 받았다. 할머니의 마음을 녹여낸 듯한 편지를 읽던 50년 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때는 손주를 보내놓고 얼마나 노심초사하셨을까 하는 슬픔으로 며칠을 지냈다.


매년 5월이 오면 그 시절 신발과 입고간 옷을 받으시며 복받쳤던 할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찹찹한 기분이 든다. 지금은 입영한 병사의 옷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동의한다면 어려운 곳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 년 후, 나보다 2년여 먼저 입대한 형의 제대로 할머니의 마음은 훨씬 나아지셨다. 그때는 육군 사병들의 복무기간은 36개월이었는데 지금은 21개월로 단축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 할머니의 편지는 힘든 군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한국인의 특성을 말할 때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의 딸과 강제 연행하여 노무자나 전선의 총알받이로 간 아들의 부모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나라를 어렵게 찾은 후에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많은 사람이 북한으로 끌려갔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아의 해외 입양은 부모를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 또한 한이 맺힌 민족의 한 단면이다.

한국인이라면 대개 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조부모 시대의 극악 무고한 일제 찬탈, 6.25전쟁의 참혹상, 가난했던 시절의 고난, 그리고 이민자의 새 삶을 살면서의 애환! 아직도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한이 맺혀진 각자의 지나간 생활은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힘든 시절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은 세계에 우뚝 선 대한민국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자.

<방무심 / 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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