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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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국경 없는 언어

2020-05-04 (월)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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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온라인 수업에서 16명의 미국인 학부생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한류스타를 적어보라고 했다.

BTS, 보아, 배수지, 소지섭, 유재석, 김연아, 박지성, 봉준호.

학생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들의 이름과 사진, 연애사와 생일을 한국어로 빼곡히 적었다.


“방탄소년단은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에요. 그들은 노래, 랩, 춤을 매우 잘 해요. 그들의 노래는 마음을 감동시키는 의미 있는 가사가 많아요. 저는 그들의 노래를 다 좋아해요.”

학생들은 급기야 한국어로 시를 썼다. “오랜지 사이다 같이 톡 쏘는 목소리를 사랑해요.” 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학생들까지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학생들은 애정을 꾹꾹 담아 코로나로 바뀐 일상 속에 그들이 누리는 한류의 힘을 발표했다. “요즘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한국어가 늘었어요.” “한류는 사랑스러워요.”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매우 재미있고, 행복합니다.” “한류의 힘은 에너지와 긍정입니다.”

한 미국인 학생은 “이전에는 외국어 공부를 무척 싫어했는데 한류 덕분에 한국어 배우는 것이 즐거워요.”라며 한국어 학습 동기가 한류라고 강조했다. 학생들 대여섯 명은 한국에 가서 취업하고, 결혼하고, 공부하며 살고 싶단다.

비단 한국어 수업을 듣는 미국 학생뿐 아니라 졸업 연구를 하며 현장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의견도 그러했다. 배고픈 북녘 땅에서도 한류는 국경을 넘어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북한 기자 출신 김길선씨는 한류가 준 울림을 “내 인생을 그대로 표현한 노래구나.”라고 언급했다. “솔직히 북한에서는 내색을 못하고 표현을 못하는데,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데 저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한다, 그게 노래로 솔직하게 담겨져 있는 거예요. 북한의 노래는 김일성 족속들 노래인데, 한국에서는 자기 생활 그대로 행복과 시련을 부르는데, 그게 엄청 좋았어요. 가사 없이 곡만 들어도 가슴을 울리지.”

한 탈북자 친구는 “어떤 말로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데, 이 노래가 가장 위안이 돼요.”라며 욕이 찰지게 구성된 랩을 카톡으로 보내 주었다.

어디 탈북자뿐이랴, 북한 지도부에서는 그 마음의 울림을 ‘오염’이라고 지칭하고 한류를 단속 했다고 한다. “한편의 노래가 백만 대군의 위력보다 더 크다. 무조건 막아라.” 내가 만난 탈북자 친구는 특별단속 지시를 피해 몰래 듣던 한류 노래를 불러주었다.

한류는 비록 언어와 문화가 다를지언정, 국경을 넘나드는 언어였다. 미국 학생들에게는 마치 탄산에 중독된 것 같은 설레임이며, 북한 정권에게는 체제를 위협하는 자본주의의 독소이고, 북한 사람들에게는 탈북의 강한 동력이었다. 그 언어는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장래의 직업과 삶의 터전을 흔들 수 있는 초월적 힘이고 부르심이었다.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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