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독설이 국제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정은의 체구나 행동거지에서도 그가 환자라는 것은 한눈에 누구나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국내외적 상황이 미묘한 터라 그의 위독설이 더욱 큰 관심을 모으는 것 같다.
북한은 지난 4월10일 전국인민대의원대회를 열 예정이었다. 그런데 돌연 12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모종의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던 예상도 빗나갔고 이례적으로 김정은과 김여정이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4월15일은 북한의 ‘태양절’(김일성의 생일)이다. ‘유일사상’을 간판으로 내건 체제에서 태양절은 성스러운 명절이다. 그런데도 김정은이 참배를 하지 않았다. 즉 유일체제 수령 절대주의 정권에서 원조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손자 김정은이 참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적 사건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무슨 곡절이 있는 건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북한의 당면 절대 과제는 체제보장이다. 미국 등 강대국들과의 모든 협상에서도 체제 보장을 우선순위로 내놓는다. 내부적으로도 주민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충성, 충효다. 체제 수호와 김일성 혈통에 효도를 다 하라는 얘기다. 이런 북한에서 전국 대의원들이 모이는 행사에 ‘최고 존엄’으로 불리는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더군다나 선왕격인 김일성 참배 순서를 그냥 지나가다니 매우 기이한 일이 아닌가, 외부 세력 특히 미국의 궁금증이 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정은이 대회장에 계속 나타나지 않는 것을 두고 몇 가지 추리가 떠오른다. 북한은 지금 내부적으로 숨 막힐 지경의 막다른 상황이다. 정권유지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핵 보유 고집이 미국의 완강한 경제제재와 갖가지 국제적 압력에 맥을 못 추고 있다.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으로 북중 국경마저 폐쇄되는 바람에 식량 사정이 바닥을 치고 있다. 해상 밀수의 주축을 이루던 선박들마저 발이 묶여 남포 해주항 등에 줄줄이 정박돼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남한의 총선거가 북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모든 각종 대회는 사실상 토론이 없는 ‘명령대회’다. 어떤 정책, 어떤 사안이든 김정은의 연설이나 성명서 낭독, 공식 발표 한 번이면 그 이상의 권위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만약에 이런 군중대회에서 토를 달거나 반대 의사를 표하면 그 자리에서 처형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에도 지금은 300만 대 이상의 핸드폰(Cellular Phone, 손전화)이 사용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에서 유행하는 노래가 일주일이면 평양시내 여기저기서 들려올 정도다. 남한 소식을 북한 주민들도 거의 동시에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울에서 정권 심판론, 검찰 개혁론 등등 자유롭게 말하고 권력자에게 마구 직설을 퍼붓는 이런 민주주의 풍토가 때를 맞춘 듯 4월 15일 총선거가 진행된 것이 김정은에게는 크게 심리적 부담을 안겼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핵 보유 당위성을 주장하고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을 변명하고 정권에 충성을 강요해야 하는 그런 자리에 얼굴을 내밀어 남한의 현실과 비교되는 것이 매우 불안했을 것이다. 김정은은 북한 전역에서 대표가 집결하는 그런 자리에 섣불리 등장했다가 뒤숭숭한 민심들에게 자유에 대한 깨달음으로 의식전환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과 교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국면전환의 방편으로 남한에 대한 국지전 등 무력도발 따위의 구상을 시도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북한의 대회 일정이 예고 없이 이틀이나 연장되자마자 미국은 공군, 육군 소속의 정찰기들이 동해안 고공을 날며 북한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항공모함에서 뜬 정찰기도 한반도를 감시하고 있다. 미국 측이 북한에 대한 모종 정보를 입수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정찰기들은 김정은 일가만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평양 소재 ‘봉화 진료소’와 각 기관과의 전파, 대화 등을 수집하여 김정은 위독설의 진위를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 일가의 김일성, 김정일은 모두 심혈관 질환(협심증)으로 사망했다. 어느 나라 역사든 지도자가 난처한 입장에 처했을 때 ‘칭병은둔’ 즉 병을 핑계로 일정기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김정은도 정치, 외교, 경제적으로도 난관에 봉착하여 초조한 나머지 칭병은둔 위장 입원 중인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은 지극히 폐쇄적인 사회다. 김정은의 위독설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의 재기 불능이나 사망이 현실로 다가올 때 특히 한국에 미칠 영향은 매우 복잡해질 게 틀림없다. 더군다나 군사 경력이 아주 일천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겸 정치국 후보위원이 후계자로 등장할 경우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관계에 한층 더 복잡한 함수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여하튼 김정은 위독설 여부의 진상은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북미 사이공 회담 이후 물러났던 김여정을 실세로 전격 끌어올린 배경이 무엇인지, 몇 가지 궁금증은 계속 북한 정권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그 이후 이야기는 길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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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