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낳고/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봄비로 잠든 뿌리를 휘젓는다.
T.S. 엘리엇(1888~1965)의 장시 ‘황무지’의 첫 구절로, 4월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시다. 433행이나 되는 황무지는 종교적 신앙을 잃고, 생식의 기쁨을 잃고, 썩어서 사라지길 거부해 재생도 불가능한 서구문명의 비극성을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2년 엘리엇이 ‘가장 잔인하다’고 말한 4월은 거의 1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가장 잔인하게’ 와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비드-19) 여파로 경제 활동이 사실상 ‘올스톱’되면서 실업대란이란 현실 속에서 ‘가장 잔인한 4월’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노동부에 따르면 4월 5~11일 사이에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524만5,000건을 기록했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실직자가 늘었다는 의미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코로나 사태로 3월 셋째 주 330만건으로 크게 늘어나기 시작해 같은 달 넷째 주에는 687만건, 그 다음 주(3월29일~4월4일)에는 661만건으로 폭증했다. 이 같은 수치만 놓고 보면 최근 4주간 코로나 사태로 약 2,2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그렇다면 코비드-19 때문이라지만 유독 미국에서만 실업대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엔 손쉬운 해고가 가능한 미국 특유의 ‘일시 해고’라는 고용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디즈니월드 4만3,000명, 메이시스 백화점 12만5,000명, 의류업체 갭 8만명 등이 일시 해고로 일자리를 잃었다. 물론 경영이 정상화되면 재고용한다는 관행이 있다고는 하지만 해고는 해고다.
유럽 각국은 사업장 폐쇄 등의 조치에도 임금노동자들의 급여를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일자리 지키기 우선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반면 미국은 실업수당의 기간과 적용 범위만 늘리는 정책에만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영국은 식당 영업을 제한하면서 식당 근로자들에게 한달 2,500파운드(약 3,086달러) 한도로 임금의 80%를 보존해주고 영업 제한이 풀리면 일자리 복귀를 약속한 반면 미국은 실업자 수당에만 지원을 집중해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했다.
일자리가 한번 없어지면 다시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경제적 비용이 수반된다는 것은 지난 2008년 금융사태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고 해도 경기 회복이 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일자리가 계속 사라지는 한 실업수당이나 모기지, 렌트비 유예 등 임시방편만으로 임금노동자들이 버텨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5월이나 6월 재택 근무에서 직장 근무로 전환될 때 ‘출근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분으로 실업이 여전히 우리의 일상화된 삶이 된다면 ‘가장 잔인하다는 4월’은 어쩌면 그 잔인함의 서막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
남상욱 경제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