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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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2020-04-20 (월)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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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스갯소리로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코로나 19 사태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완전히 반대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강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집에 머무를 것을 지시한 지 약 한 달이 되었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여기저기 쏘다니기 좋아하던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참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들이 아닐 수 없다. SNS 상에서는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에 자신의 사진을 합성해 올리기도 하고 쓰레기 버리러 가는 길에서라도 멋을 부려 보겠다며 집 앞 패션쇼를 펼치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내 심심함은 철없는 투정에 불과하고, 계속되는 암울한 뉴스에 사실 마음이 편치 않다. 미국 곳곳에서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사실 믿기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투를 펼치고 있는 의료진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온라인 한인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코로나 19로 인해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는 글들을 볼 때마다 이제는 이 무시무시한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번 사태로 경제적 궁핍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번 사태로 오래 다니던 직장을 잃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서류미비자나 페이첵 투 페이첵(paycheck to paycheck)으로 살던 사람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당장 내일의 식량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난할 상대가 필요한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과 더 나아가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비판 발언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시안을 향한 무차별적인 테러 사건들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같은 아시안으로서 가슴이 철렁거린다.

어떤 이들은 제때 대처를 하지 못했다며 정부를 비난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저소득층과 소상공인들을 위한 정부의 보조 대책들이 나오자 본인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도 혜택을 하나도 받지 못한다고 볼멘소리를 해대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고국의 모습을 보니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다.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은 이제 코로나 19 소강상태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선거까지 잘 치러내 세계가 놀랐다. 정부의 발 빠른 대처와 선진 의료 기술이 한몫을 했다.

한국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세계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국의 노하우를 해외 곳곳에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이때에 이렇게 이웃나라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가 빨리 이 사태가 진정되고 다시 옛날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보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이 전 세계적 재앙 사태를 하루빨리 타파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 돕고 보듬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비록 몸뚱이는 뭉칠 수 없지만 우리 마음은 힘껏 뭉쳐보자. 나는 믿는다. 그래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말이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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