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코비드-19 와 응급실 의사

2020-04-16 (목) 안상호 논설위원
크게 작게
LA카운티의 대형병원 응급실 의사인 한민수 씨와 통화를 했다. 오전에 메시지를 남겼더니 저녁 무렵 연락이 됐다. 50대 중반의 1.5세 의사인 그는 최일선에서 코비드-19에 대처하고 있는 LA 의료진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상황이 매일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온 병원 회람에 따르면 LA의 코비드-19는 다음 주말께가 피크로 예상되고 있다. 그는 하루에 확진자 12명을 진료한 적도 있었다. 2주 전이었다. 그 때는 병원 내 긴장도 한껏 고조됐었다. 상황은 조금 누그러지는 느낌이라고 한다. 요즘은 그가 보는 응급환자 중에서 확진자는 하루 3~4명 정도라고 한다.

코비드-19 확산 초기에는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플루 정도에 비교하던 사회 일각의 분위기 속에서 막상 맞닥뜨려 보니 그보다 세고 심각한 놈이었기 때문이다. 혼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치료약은 없다. 하지만 적의 정체는 어느 정도 파악되고 있다. 환자를 단순히 수치만 보고 치료하던 초기와는 달라졌다. 증상에 따라 다른 약을 쓰는 등 치료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종합적으로 취합이 되지 않아 그렇지 병원마다 그간 상당한 경험과 나름의 치료 노하우가 축적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병원의 경우 15일 아침 현재 코비드-19로 입원한 환자는 40여명. 절반 정도가 중환자실에 있다. 확진 판정을 받아도 증상에 따라 집에서 자가치료하는 경우가 많아 입원환자는 중증으로 분류된 사람들이다.

초기에는 여러 면에서 혼선이 있었다. 알려진 대로 병원마다 마스크 등 기본 의료장비부터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응급실 의사에게 마스크 3장을 주면서 2주를 쓰라고 했다니-. 그나마 다른 의료요원들에게는 지급되지 않아 문제가 됐다. 원래 마스크는 하루 쓰거나, 어떨 때는 환자 한 사람을 본 후 버리던 것이었다.

그와 동료 의사들은 마스크가 필요하지 않다는 질병통제예방국, CDC 발표를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고 한다. 의료진에게도 제대로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반인들까지 몰려들 때 야기될 사회적 혼란을 우려한 정치적인 조처로 이해했다고 한다. 그런 의혹은 사실로 판명됐다. 이 병원의 경우 마스크 등 장비 문제는 이제 모두 해결됐다.

마스크 문제의 조기 해결에는 커뮤니티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그와 함께 운동을 하는 한인 사업가가 마스크 1,000매를 응급실에 기부했고, 중국인 커뮤니티에서도 다량의 마스크가 지원됐다.

한민수 씨는 응급실 의사로서 캘리포니아 주의 과단성 있는 대처가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가 대피령과 비필수 업종의 영업중단 등 개빈 뉴섬 주지사의 발 빠른 조처가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본다. 군의관 출신인 그는 워싱턴 주로 향할 예정이던 해군 병원선을 LA에 잡아 놓은 것도 빠른 대처의 결과라고 했다.

코비드-19의 상황은 지역마다 다 다르다. 응급실 복도까지 환자가 밀리는 뉴욕, TV 화면에 자주 잡히는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 등은 한때 그가 근무하던 곳이었다. 뉴욕의 동료 의사들과 전화하면 그 곳은 살벌하다고 한다.


그는 코비드-19가 시간적으로 시애틀과 뉴욕을 거쳐 캘리포니아로 확산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그 바람에 미리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뉴욕처럼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사회적 거리두기가 비교적 용이하게 지켜질 수 있었던 것도 LA의 상황을 이 정도에서 붙잡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보고 있다.

코비드-19 대처 태세는 같은 지역이라도 병원에 따라 다르다. LA 카운티 병원인 USC 메디컬센터나 오렌지카운티의 응급 거점병원인 UCI 메디컬센터 등은 내과 병동이 아닌 곳의 스탭도 대기시키고 필요한 교육도 받게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병원들은 일반 환자가 급감해 응급이 아닐 경우 외래 수술 등은 모두 취소된 상태.

닥터 한이 근무하는 병원은 응급실만 100베드 정도로 응급 베드 절반은 코비드-19에 대비해 오염된 실내 공기가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음압 설비를 갖췄다. 하지만 응급환자는 오히려 반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그는 원래 응급실 환자 중 10%는 진짜 응급, 40%는 긴가 민가 의문형, 50%는 응급실에 오지 않아도 되는 환자로 분류한다. 그 ‘안 와도 되는 사람들’이 지금 병원에 가면 오히려 감염자와 조우할 우려가 높고, 병원 응급실도 분주할 것으로 지레 짐작해 응급실 방문을 자제하면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응급환자 한 사람 처치에 걸리는 시간은 평소의 2배라고 한다. 배가 아픈 것도 코비드-19 증상의 일부이므로 복통 환자가 와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사태가 닥치면서 근무시간이 주 10시간 정도 더 늘었다. 응급실 앞에는 텐트를 쳐 놓고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전화 말미에 가족들이 출근할 때마다 걱정하시겠다는 인사말을 하자, “걱정이야 하죠. 100% 방역이 된다고 할 수도 없구요. 하지만 이러려고 의사가 됐는데요, 뭘-” 그는 쿨 하게 대답했다.

<안상호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