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넷 연주자 조원진(40)씨는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곳곳에서 예정돼있던 약 30회의 리허설과 콘서트가 줄줄이 캔슬됐기 때문이다. 뉴욕의 프리랜서 뮤지션인 그는 2개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면서 이곳저곳 로컬 공연에 초청돼 연주하고 학교와 학원에 출강하는 빠듯한 음악인의 삶을 이어왔다. 그러나 2020년 봄 코비드19 사태에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전무후무한 재난이다. 단 한건의 연주도, 한푼의 수입도 없는 완전해고 상태다.
조씨와 같은 이런 공연예술가들이 미 전국에 250만명이나 된다고 한 통계는 전한다. 지금 상황에서 힘들고 황당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예술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더 타격이 심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생존에 직면했을 때 예술은 언제나 가장 뒷전이기 때문이다.
원래 예술가들은 호황기에도 배가 고픈 사람들이다. 정해진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험도 노조도 없으며, 건당 수입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그토록 불안정한 라이프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열정과 자부심, 그리고 작품 속에서 얻는 희열일 것이다.
예술 장르 중에서도 특히 공연예술 분야 종사자들--배우, 가수, 악기연주자, 무용수, 합창단원, 연출가, 안무가, 조명·음향·세트·의상·설치 전문가들이 가장 취약하다. 이런 사람들은 공연과 이벤트가 있어야만 잡이 생기고, 공연 횟수에 따라 혹은 프로젝트 당 계약으로 일을 한다. 연봉이 보장된 유수 오케스트라의 정규단원이나 유명 연주자, 지휘자 같은 이들은 1%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99%가 이런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재정이 가장 건실하고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교향악단인 LA 필하모닉도 이번 사태에는 무사하지 못하다.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티켓수익 손실이 약 1,000만달러에 달하고 올여름 할리웃보울의 개막 여부조차 불투명해지자 LA필은 최근 94명의 파타임 직원을 해고하고, 오케스트라 정단원 101명과 풀타임 행정직원 174명의 봉급을 35%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구스타보 두다멜 음악감독은 이 기간 중 월급을 받지 않기로 했다.
미국 내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기관인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4월부터 노조직원들의 임금지불을 유예하고, 간부급 행정직원들은 월급을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피터 겔브 단장은 무급으로 일하기로 했다.
클래시컬 분야만이 아니다. 라이브콘서트 한번에 청중이 수만명씩 모이는 대중음악 업계의 손실은 올해 9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3월 중순 모든 공연을 취소하고 전 직원 4,679명 중에서 핵심 259명만 남겨놓고 95%를 해고했다.
뮤지엄들도 타격이 크다. LA 다운타운의 모카(MOCA) 현대미술관은 파타임 97명을, UCLA 해머 뮤지엄은 학생 직원 150명을, 뉴욕의 모마(MoMA)는 85명의 프리랜서를, 휘트니 뮤지엄은 76명을, 구겐하임은 92명을 해고했다.
최근 새 건물 신축을 위해 철거작업을 시작한 라크마(LACMA)의 경우, 철거하는 4개 건물의 전시장들은 작년부터 문을 닫았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 이전에 이미 상당 수준의 인력 정리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기에 게티 재단이 1,000만달러의 구제기금을 내놓은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 기금은 LA 카운티의 중소규모 시각예술 기관들의 지원에 사용된다. 언제나 남가주 문화예술계의 맏형 노릇을 하며 시의적절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게티는 이번 위기에도 1,400여명의 직원을 한명도 해고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사태가 문화예술계에 미치는 영향은 가늠이 힘들 정도다. 티켓 수입은 둘째 치고, 공연단체들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부유층 후원자들의 기부도 줄어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공황에 비견되는 경기침체가 예상되고 있으니 누가 주머니를 열겠는가. 작은 공연단체들은 아마 영구히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예술계의 회복력은 고통스럽게 약하고 느리다. 자택격리가 풀리고 사람들이 일상을 되찾고 경기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다 해도 예술계는 가장 나중에 기운을 차릴 것이다.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문화예술은 맨 마지막 순위에 놓이기 때문이다.
<
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