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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시대의 요리 테라피

2020-04-14 (화)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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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로 ‘리틀 포레스트’가 있다. 동명의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임순례 감독이 만든 영화였다.

주인공 혜원은 고단한 도시생활에 지친 젊은이. 숨 돌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렸지만 시험도 떨어지고 취업에도 실패한다. 자의반 타의반 연애도 끝났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심신은 탈진한 그는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음식을 만들고, 어릴 적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는다.

모두가 성공에 올인하는 시대, 그만큼 경쟁은 심하고 낙오자가 많은 시대에 영화는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보여준다. 바깥의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단순한 삶을 살다보면 가슴으로부터 차오르는 기쁨이 있다. 주인공은 특히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여러 음식들을 만들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관객들 역시 마음이 편안해져서 힐링 영화로 꼽힌다.


신선한 식재료를 준비해 깨끗이 씻고 다듬고, 자르고 다지며, 삶거나 볶아서 음식을 만드는 작업, 즉 요리가 정신건강 테라피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요리는 육체노동에 겸해 마음을 집중해야 하는 작업. 요리를 만들려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정해진 순서와 틀에 따라 일정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면 맛있는 음식이 결과물로 얻어진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긴장을 완화하고, 성취감을 주며, 동기부여 효과가 있어서 정신건강에 좋다는 결론이다. 요리를 하다보면 잡념이 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콕 생활을 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베이킹 즉 빵 굽기가 뜨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경제는 얼어붙고, 바이러스 감염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우울감과 불안증, 두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팬데믹 와중에 가족들은 무사할지, 이 사태가 얼마나 오래 갈지, 유행병이 지나가고 나면 일자리는 온전할지 … 모든 것이 불확실하니 불안감은 높을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 감염예방 못지않게 정신건강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뭔가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것, 자신이 통제할 수 있으면서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좋은 데, 그중에서도 빵 굽기가 인기이다. 자택격리 베이킹 해시태그(#quarantinebaking)가 등장했을 정도이다.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반죽이 부풀어 오르기까지 여러 시간을 기다리고 부푼 반죽을 오븐에 넣고 구우면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우고 마침내 먹음직스런 빵이 눈앞에 등장하는 전 과정이 마음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집콕생활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부정적으로만 치닫는 망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그동안 너무 바쁘게 지내던 삶을 찬찬히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빵을 사진 찍어 SNS에 올리면 “정말 직접 만든 거야?”하는 칭찬도 듣고, 이웃들과 나누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에 정서적 거리 좁히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요리가 누구에게나 긴장 완화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재택근무하고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하느라 온 가족이 하루 24시간 같이 있는 가정에서 매일 삼시세끼 챙기는 주부들에게 요리는 스트레스 그 자체이다. 이런 가정에서도 요리의 힐링 효과를 누릴 수는 있다. 물론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부부가 번갈아 가며 식사준비를 하는 것, 가사분담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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