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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2020-04-1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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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하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이고 있다. 3월 중하순 60%에 이르던 미국 내 확진자 증가율은 이번 주 들어 사실상 감소세로 돌아섰다. 미국 내 확진자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뉴욕의 하루 확진자 수는 4월초 1,294명에서 지난 주 500대로 줄어들었고 가주도 지난 주말을 고비로 확진자 수나 사망자 수 모두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조만간 코로나 사태도 끝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이에 따라 한때 안전 조치를 취해도 사망자 수가 24만에 이를 수 있다던 전문가들도 수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기관의 하나인 워싱턴대 보건 수치 연구소는 미국 내 총 사망자 수를 9만대에서 지난주 6만대로 낮춰 잡고 사망자가 정점을 이루는 시기도 4월 16일에서 12일로 조정했다. 이것이 맞다면 이미 가장 위험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

세계적인 상황도 비슷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은 지난 주 76일 만에 봉쇄를 풀었고 유럽 최대 코로나 환자 보유국인 스페인도 안정세로 접어들었다고 보고 13일부터 30만 비핵심 업종 직장인들의 복귀를 허용했다. 돌발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미국도 다음 달부터는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일단락되더라도 그 이전과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우선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직장 폐쇄로 지난주까지 1,700만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복귀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이들이 단기간에 모두 잃어버린 직장을 되찾을 가능성은 낮다.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경기의 V자 반등을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의 구조적 변화다. 사람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실물보다 사이버 공간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소매상과 쇼핑몰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도 아마존만은 날개를 달고 펄펄 날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10만명을 추가 채용한 아마존은 다시 7만5,000명의 직원을 더 뽑는다고 한다. 남들은 집단 감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 아마존 직원 규모는 40%가 늘어났다. 마스크를 하고 장시간 줄을 서서 쇼핑을 하는 것보다 가만히 집에 앉아 편안하고 안전하게 물건을 사는데 맛을 들인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은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추세로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벽돌로 지은 쇼핑몰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도 미국에서 8,600개의 쇼핑몰이 문을 닫았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2017년 향후 5년간 20~25%의 쇼핑몰이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코로나 이후 이 수치는 상향 조정될 게 확실하다고 봐도 된다.

또 하나는 재택근무의 증가다. 강제로 직장이 폐쇄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일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결과 많은 직원과 회사들이 반드시 모든 직원이 직장에 나올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출퇴근 시간이 줄면서 여유시간이 늘어났고 트래픽이 사라졌으며 기름 값은 내려가고 공기는 맑아졌다.

미국 내 최악이던 LA 공기가 미국에서 가장 깨끗해졌다는 기사가 최근 나오기도 했다. 맑은 공기는 주민 모두의 건강을 개선하고 지구온난화를 막는 역할을 한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은 과연 모두가 직장에 날마다 출퇴근 하는 문화가 최선인지를 자문하게 될 것이다. 오피스 빌딩 수요는 감소할 것이라 보는 것이 맞다.

사이버 공간의 중요성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 IT 등 하이텍 산업이다. 재택근무는 물론이고 온라인 강의가 보편화되면서 고속인터넷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회식 등 사교모임이 사라지면서 소셜미디어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AI를 이용한 원격 진료와 무인 자동차가 보편화되는 날이 앞당겨 지는데 코로나도 한몫을 할 것이다. 전기, 전자, 컴퓨터, 인터넷 관련 업종의 전망은 밝다고 봐야 한다.

14세기 중반 흑사병은 유럽을 강타한 후 사라졌지만 그 후 오랫동안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역병이 찾아왔다. 인간이 지금처럼 계속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야생동물을 보양식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코로나 사태는 재연될 수 있다. 앞으로 달라질 세상에 대한 깊은 사려와 준비가 필요한 때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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