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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편의주의’

2020-04-08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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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검찰이 갖고 있는 무소불위의 힘은 독점적인 기소권에서 나온다. 독점적 기소권으로 인해 검찰은 범죄 혐의가 없는 피의자를 기소할 수도 있고, 범죄 혐의가 명백한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른바 ‘기소 편의주의’다. ‘기소 편의주의’는 법으로 보장된 검찰의 권한이다. 검사의 재량에 따라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 마디로 검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죄를 지은 사람도 얼마든 봐줄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을 할 수 있는 힘 못지않게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이 검찰 권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기소 편의주의’를 권력의 눈치 보기를 위해, 혹은 검찰 자신의 정치를 위해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는 오욕의 검찰역사가 생생히 증언해주고 있다.

‘편의주의’는 자신의 편리와 이익을 판단과 행위의 기준으로 삼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편의주의’는 아무리 법률적으로 규정된 권한이라 해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원칙이다. 결코 이를 남용하거나 악용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강자의 편의주의는 위험하다”고들 하는 것이다.


검찰 못지않게 ‘편의주의’를 자주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또 다른 권력은 언론이다.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보도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왜곡하기도 하고 또는 외면하기도 한다. 입맛에 맞는 것은 침소봉대하고 불편한 것은 서슴없이 버린다. 검찰의 ‘기소 편의주의’에 빗대 ‘보도 편의주의’라 부를 만하다. 서글픈 것은 이런 언론의 편의주의적 태도가 이들에게는 수익과 영향력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보도 편의주의’는 양극화 시대에 독자와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고 결집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 접근법이 돼 버렸다.

검찰이 어떤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한 반면 특정인들은 아주 가혹하게 다루듯 언론 또한 우호적인 개인 혹은 집단의 비리에는 눈을 돌리면서 싫어하는 개인 혹은 세력의 흠결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공격적인 보도를 한다. 한 논객은 이런 행태를 ‘선택적 기자정신’이라 지칭한다.

나는 ‘선택적’이란 표현 속에 언론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이 집약돼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단어는 태도뿐 아니라 보도방식의 문제점까지 함축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도하는 친트럼프 매체들의 방식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요약하자면 어김없이 중국 비난으로 시작해 위험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깎아 내리고 코로나19를 이겨낸 사례를 부각시킨 후 모든 것을 좌파들이 만들어낸 음모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 4단계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건 3번째 단계의 ‘생존 스토리 부각시키기’이다.

3월 중순 폭스TV는 코로나19에 감염됐음에도 별 증상 없이 넘어간 65세 여성의 사례를 집중 보도했다. 기자는 “이 사람을 보라”며 “당신은 60살이 넘었는데도 별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렇죠?”라고 반복해 여성에게 물었다. 이 스토리는 곧바로 보수 라디오 진행자인 러시 림보를 통해 그의 프로그램을 듣는 1,550만 청취자들에게 퍼져나갔다. 이 스토리를 들은 수많은 청취자들이 코로나19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됐을지 끔찍하다. 코로나19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전형적인 ‘선택편향’ 보도였다.

선택편향은 무수한 사례들 가운데 자기에게 필요한 극소수 경우만 골라 마치 전체가 그런 것처럼 채색하는 의도적인 오류다. 아주 드문 무증상 감염 사례를 소개하면서 마치 코로나19에 감염돼도 별일 없을 것이라 여기게끔 만들어온 것이 트럼프 친위 언론들이 저질러온 비윤리적 보도행태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코로나19 방역을 높이 평가하는 해외언론 보도와 외국정부의 찬사를 철저히 외면하자 일부 국민들 사이에는 “한국의 방역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BBC, CNN, 뉴욕타임스 같은 외신들이야말로 ‘민족정론지’라 할만하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뼈아프면서 웃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바른 언론의 자세에 어울리지 않는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르라면 그것은 ‘편의주의’라 할 것이다. ‘편의주의’라는 유혹에 굴복해 소명과 원칙을 저버린 채 선택적으로만 기자정신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그들 스스로뿐 아니라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국가적 위기와 전 지구적 재난 상황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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