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가 블랙홀이 됐다. 전 미국이 COVID-19(Corona Virus Disease 2019)에 함몰되고 있다. 적어도 베이비붐 세대 이후의 미국은 코비드-19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세계는 순식간에 딴 세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바이러스가 있다. 원래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사람 간의 신뢰와 배려, 교유가 있어야 할 자리를 괴물이 차지하자 세상은 급변했다.
코비드-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모두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선의 방책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나 독거노인 등은 그나마 지키기가 어렵다. 일을 해야 밥을 벌고, 버스라도 타야 약국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온 식구의 생계가 걸린 가게의 문을 닫아야 하는 자영업자들은 신경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다. 감염 우려도 우려지만 경제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미국인 3분의1은 일생에 한번은 우울증(depression), 불안장애(anxiety attack), 공황장애(panic attack) 등을 앓는다는 통계가 있다. 요즘 같은 때 없던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덮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신신경과 전문의 정균희 박사를 찾았다. 70대인 그는 의사이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는 자녀들은 병원에 출근하는 그를 걱정하고 있다고 했지만 오히려 환자 몇 사람이 예약을 취소했다. 집에서 45분 걸리던 오피스까지 25분 만에 왔다고 한다.
그는 위기 때마다 느끼는 한인 이민자들의 문제는 충격완화 장치가 취약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투자나 비즈니스 운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의 지렛대 효과를 노리고 최소 투자 후 올인하는 것이 우리네 패턴이었다. 대신 한번 흔들리면 와르르 무너졌다. 정신건강도 다르지 않다. 정신적 여유없이 자기 한 몸으로 밀어붙이고 버티다 보니 정신적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쿠션이 없다. 정신과 의사로서 요즘 그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정신을 다치면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현미경을 들이댄다고 불안증의 병원균을 찾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약도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엔 한 시간씩 이야기하면서 정신분석으로 치료를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약으로 무너진 뇌의 화학물질 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약물치료를 전공한 그는 말한다. 그런 후 심리치료 등을 하는 게 순서. 아직 뇌의 세계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을 활용해 최선의 치료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뇌 질환자 단체의 한 관계자는 요즘 같은 때는 중증 환자들 보다 상황인식이 가능한 경계인들이 더 문제라고 한다. 평소에는 치료와 섭생을 통해 다스려지던 공포증 등이 부쩍 심해진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이들이 겪는 이중고를 남들은 알 리가 없다. 이들은 사회적 보호 장치가 미처 가닿지 않는 틈새에 있거나 일반적인 사회안전망에서 후순위로 밀린 사람들이다.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 장년 남성은 요즘 들어 덜컥 불안이 덮쳐 올 때가 있다. 뉴스만 틀면 갖가지 흉흉한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면서 공포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호흡이 가빠지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이틀 뒤 의사 진료 예약이 잡혀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약을 처방받고 늘 가던 타운 약국에 갔더니 한 달 전에는 있던 그 약이 없다. 도매상에서 오지 않았다며 큰 약국에 가보란다. 신경안정제 중에서는 소화제처럼 여겨지는 기본적인 약품인데 대형 약국 체인점에도 이 약은 떨어졌다. 상황이 이러니 수요가 급증한 것인가. 그 다음날 약을 타긴 했으나 비상시에 대비해 처방약은 석달치를 준비해 놓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집안에만 머물라고 하지만 ‘방콕’은 망상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방콕에서 시작되고, 역으로 우울증이 시작되면 방콕 현상이 나타난다. 방안으로 망명해 들어가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것은 또 다른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필수적인 정보는 알아야 하겠지만 불요불급한 뉴스와는 거리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지금은 자기 자신과 가족, 이 세계에 대해 한번 되돌아 볼 때라는 것이다. 불안처럼 편안한 마음도 전염되고, 공명현상을 일으킨다. 명상과 기도는 좋은 방법이다. 일방적인 독백성 기도보다 절대자와 대화하듯 하는 기도가 더 효과적이라고 정균희 박사는 말한다.
지금은 위기지만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우울과 불안, 공황 등은 배고픔과 갈증 등 직접적인 통증 다음에 온다고 한다. 그래서 대공황, 2차 대전, 6.25전쟁 때 자살률은 떨어졌다고 한다. 힘겹지만 가까운 데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부축하고 격려하며 이 고개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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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