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 엑소더스

2020-04-02 (목)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작게 크게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주요내용은 히브리민족의 대탈출, 엑소더스(Exodus)이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인 200여만명이 모세의 인도 하에 대규모로 탈출하는 이야기다.

베네수엘라가 극심한 경제난을 못 이겨 이웃 나라로의 대탈출이 벌어지자 콜롬비아와 브라질 등 주변국가에서 더 이상 그들을 수용할 수 없다면서 국경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이와 같은 대탈출, 엑소더스 상황이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자 수가 날로 늘어나면서 감염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대탈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에서도 음력설 직후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피난하거나 혹은 미국 등 전 세계에서 한국행 비행 편을 이용하는 교민들의 숫자가 크게 늘고 있는 양상이다. 대부분 전 세계에 산재된 한국유학생들로 이들이 예정에도 없던 본국으로의 귀국을 서두르고 있다. 급속한 감염속도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간단한 짐만 챙겨 서둘러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입국하면 2주간의 격리라는 어려움을 감수하고도 귀국 행을 감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수용할 비즈니스나 액티비티도 크게 늘고 있다 한다. 동반자 외에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련돼 있는 리조트다. 음식을 방안에서 해결하고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인적이 드문 해변을 거닐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식의 격리형 힐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 해외로 못가는 사람들이 이러한 도피형 리조트를 찾아 1개월 정도씩 예약을 하는 경우가 90%에 달하고 타인과 접촉할 일이 거의 없는 캠핑장 경우도 이미 다 차 예약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도피형 대탈출은 미국에서도 노블리제 오블리주 격에 맞지 않게 부호와 사회적 엘리트층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부호 1%가 최근 코로나19 감염확산이 현실화되자 서둘러 한적한 곳으로 도피하고 있다. 플로리다나 버몬트 등에 매입해둔 외곽 별장으로 가서 코로나 확산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시도이다.

실제로 CNBC 방송이 최근 코로나19를 피하기 위해 미국 부유층들이 수영장이나 체육관까지 딸린 호화대피소를 사들이거나 외딴섬을 아예 통째로 매입하려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하대피소인 벙커 제조업체에도 구매문의가 폭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업체들은 평소 고객유치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고객이 더 절실하게 찾는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다.

수요자는 대체로 전문의와 엔지니어들인데 매입에 관한 문의는 유럽이나 중동, 일본에서까지 오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단위의 6주간-2개월간 정도의 요트 전세 문의도 최근 들어 평소 30건에서 400건 정도의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한창 병원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죽어가는 환자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의 애타는 현실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의료진 부족의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고 감염에 대한 두려움도 마다한 채 의료현장으로 달려 나오는 은퇴한 의사와 간호원들, 현장에 투입되는 의과대학 예비졸업생들. 이들이야말로 참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실체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헌혈에 동참하고 나서는 사람들, 부족한 의료장비에 보탬이 되고자 보유한 마스크를 선뜻 내놓거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마스크나 세정제를 만들어 기부하는 사람들, 마트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노약자를 위해 식료품을 대신 사다주는 사람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작은 영웅들이다.

구약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엑소더스를 지휘한 모세 덕분에 마침내 약속의 땅에 안착했다. 그와 같이 지금의 위기상황에도 모세와 같은 영웅은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자 애쓰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바로 현대판 선지자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