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 사태의 심리적 생존전략

2020-04-02 (목) 김자성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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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로 번진 코로나 역병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염려이고, 두번째는 경제적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이다.

첫째, 안전과 생존에 대한 염려다. 실존주의 정신의학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불안은 죽음의 불안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의식적인 면보다 무의식적인 즉 억압된 부분이 더 크다. 건강 염려증을 비롯한 여러 신경증적 증상의 배후에 이런 죽음의 불안이 깔려있다. 일상적으로 억압 잠재된 죽음의 불안이 코로나 사태로 자극되어 화산이 분출되듯 터져 나올 수 있다.

이런 불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정신의학적 정공법은 죽음의 불안을 직면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평소 죽음을 받아들이고 친숙해지는 정신적 수련이 필요하다. 만일 종교인들처럼 천국에 대한 믿음이나 윤회와 환생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또는 이런 영적 차원을 시사하는 과학적 경험적인 연구 자료에 근거해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갖게 된다면 죽음의 불안을 대면하기 훨씬 수월할 것이다. 또는 유물론적 철학자나 실존주의자들처럼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제한된 삶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자체가 대단한 심리적인 성취라 생각된다.


코로나바이러스 역병을 계기로 매일 죽음 명상 등을 통해 내적인 수련을 시작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앞으로의 삶을 고양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죽음은 실제로 삶을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실존주의 정신의학의 교훈을 우리 삶에 실현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수련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매일 잠드는 시간을 죽음의 명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즉 잠드는 순간에 정신을 집중하고 “아, 이제 오늘 내 마지막 날을 살았구나. 이제 죽으러간다”는 마음으로 잠드는 과정을 열린 마음으로 관찰하며 잠을 맞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일반적인 염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진료실에서 막연하게 불안해하는 환자에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정신적 연습이다. 즉 자기가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게 있으면 정확히 규명한 뒤 그 염려에 대한 최악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결과도 세상의 끝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실제 일어나는 것은 항상 최악보다는 나은 결과인 셈이다. 즉 마음을 비워 저 밑바닥에까지 미리 가보는 것이고, 그걸 감당할 수 있다면 염려를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언제 죽어도 마음의 준비가 된 삶에는 죽음이 더 이상 위협일 수 없고 하루하루는 덤으로 주어지는 새로운 기회, 선물인 셈이다.

경제적인 위협에 대처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 세대는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나온 세대이다. 옛날에 비해 모든 게 풍요롭고 차고 넘친다. 대형 마트나 수퍼마켓에 가보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널려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기본으로 돌아가 꼭 필요한 것만 사서 쓰는 지혜를 실천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게 살다보면 자본주의 경제가 근본부터 흔들릴 수도 있지 않나 염려하게 된다. 하지만 왜 이렇게 성장과 경제발전이 당연한 목표가 돼야하는지, 잠시 멈춰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돈은 수단이고, 좀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도구인데 왜 수단 자체가 목적처럼 돼버리는지 생각하게 된다.

6,500만년 전 큰 혜성이 유카탄 반도를 강타하며 일어난 천재지변으로 공룡시대가 끝나고 포유류의 시대가 출현하였듯 이번 코로나 사태는 뭔가 새로운 존재방식이 세계적 규모에서 출현하기위한 혜성 같은 충격이 아닐지 상상해본다. 즉 시장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강타당하고 자본주의적 ‘소유’ 위주의 삶이 그 다음 단계의 ‘행동’ 위주, 또는 보다 상위인 ‘존재’ 위주의 삶으로 진화 발전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지, 먹구름 뒤에 빛나는 은빛 띠를 그려본다.

<김자성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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