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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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선물

2020-03-26 (목) 곽상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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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보나 무엇을 보나 모두 같은 짐을 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코로나19, 그의 횡포가 끼치고 지워준 짐이다.

갑자기 밀어닥친 코로나바이러스들의 돌연한 횡포에 놀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두려움, 아니 공포, 아직 그의 정체가 분명치 않아 이 지구는 떨고 있다.

시인으로서 불가해와 가능의 접선 너머를 응시하려 한다.


지금 우리가 투쟁하는 것은 상호 간의 의심과 이기심, 권력에의 투쟁이 아니다. 공포이다. 공포가 기능을 마비시키고 문을 닫게 한다. 정체가 불투명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공통의 적, 그것을 넘어서려는 손잡은 투쟁이 필요하다. 행여 라도 우리를 분열케 하는 상호경계심과 불신은 없어야 하겠다.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해야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 다행이도 아름다운 해법이 있음을 우리는 확대경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오래 동안 무심코 걷던 거리, 오피스, 일터, 공동체에 대한 동경심이다.

지겨웠던 일상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축복이었던가를, 얼마나 행복이었던가를 돌아본다.

지금 우리는 불안과 의심 상호 경계심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진정한 휴머니즘, 이웃애를 추구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인간이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 앞에서 적과 적이 손을 잡고 불화의 울타리를 넘었던 인간애를 본다.

인간의 순수 본연에 대한 그리움, 그 순수에의 각성이다. 마스크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입, 평소 생각 없이 쏟아내던 불신과 불량한 언어. 악수를 하지 못한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조심성, 인간관계의 아름다운 배려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는 이유를 어느 설교자는 말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분별없이 산 것을 돌아보고 이제는 배려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라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했다. 덤으로 이번 기회에 무릎을 더 깊게 꿇으면 내가 보이고 내 주위의 약한 자, 고통받는 자의 아픔이 보인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일상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나를, 인류의 하나 됨을 깊이 깨닫는 일이다. 나 자신, 내가 잊었던 가족과 친지, 내가 속한 사랑하는 공동체를 깊이 돌아보며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긍휼이 얼마나 깊고 소중한 가를 깨닫는 일일 것이다.


나는 그날 아침 보았다. 최초부터 있었던 창조의 아름다움을, 코로나바이러스의 가시가 활키고 간 그 푸른 하늘의 청량함 속에 각인된 인간을 향한 그의 불변의 사랑을 보았다.

“코로나 마스크로 코가 막힌/ 세상이 참 캄캄합니다/ 갱 속같이 캄캄한 세상에는/ 틈도 분열도 보이지 않습니다/ 빈틈없이 밀착된 공간에 당신이 소곳 보입니다/ 온통 당신의 세상입니다/ 헐거운 샘물 소리 조랑조랑 들려옵니다/ 소꿉질하던 도랑물가 아른아른 쪽박에는/ 별잎 하나 동실 날아 와/ 전설의 마을이 피어납니다/ 새댁이 고깔을 쓰고 임을 기다립니다.

지금 코로나의 마술이 휘덮은 두려움이/ 사람이 없는 인간의 거리를 거만스럽게 지나갔습니다/ 인간들의 욕지거리도 잠잠하여 태초 같이 고요합니다/ 당신만이 환합니다/ 해당화 밀구비는 눈물 쭉 쭉 볼을 타고/ 우리는, / 조각처럼 깊게 내리는 당신을 확인합니다/ 코로나는 가라, 가라고”

<2020년 3월 ‘마스크’>

<곽상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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