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시인의 손 인사
2025-07-14 (월) 12:00:00
조형숙 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영상 속 시인의 모습은 한 편의 시를 보는 듯 깊고 따뜻했다. 힘없이 누우신 채로 얼굴에 띄운 잔잔한 작은 미소가 애잔했다. 입술은 미세하게 움직이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창백한 손바닥이 천천히 오른 쪽 왼쪽으로 움직이며 소리 없는 인사를 했다. 언어보다 분명한 이별의 인사였다. 시인은 떠날 차비를 하는듯 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으셨을까? 먼저 가신다는 말, 함께 할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일까? 그 것은 아마도 가장 아름답고 서러운 시인의 마지막 시 일지도 모른다.
노시인의 시는 겨울 바람속에서도 따사로웠다. 여름 더위 속에서도 시원했다. 시인의 눈에는 언제나 예쁜 꽃과 작은 새들의 노래로 가득하다. 자상하면서도 포근한 시는 전자공학도의 정밀한 눈과 샘물처럼 솟아나는 시심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었다. 자연을 무척 사랑하셨던 시인의 시는 보는 이의 마음을 감동으로 흔들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자연을 조용히 응시하여 곱고 세밀한 시로 만드는 열정의 시인이셨다. 그러나 시 안에 아픔도 깃들어 있었다. 갑자기 마지막 인사를 하신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별의 시간이 될 것을 직감했다. 영상을 다시 꺼내 보며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었던 그 말을 그의 시 어디에선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급한 미래가 현재 문턱에서 문 두들긴다
오랜 생각 소음
먼지투성이 집을 지운다
세월이 힘을 잃는다”
이 것은 ‘그대가 가면’ 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를 쓸 즈음 이미 이별을 예견하고 계셨던 듯하다. 가끔 클래스에서 뵙던 시인의 모습이 오늘 그의 시와 함께 가까이에 머물렀다. 마지막 인사하는 시간에 함께 하지 못했다. 또 다른 이별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구름 되어 하늘을 떠다니고 있다. 손명세 시인의 성함은 오래전부터 익히 들었다. 문학통신에 올라오는 글을 가끔 읽었다. 건강이 악화되셨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약해진 몸이 잠깐은 어두움이 있었을지 모르나 시인의 인품은 밝았다. 시인이 지키던 깊은 자리를 오늘 하루 지켜드리고 싶다. 이해하지 못하는 시는 읽고 또 읽어 존경 위에 놓아 시처럼 밝게 우리 가슴에 머물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도 다가올 그 시간 동안 시인의 시를 가슴에 남기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문우들은 취미를 넘어 마음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인연으로 만난다. 문우들이 마음을 모아 특별한 공간을 마련하는 일에 동참한다. 시인을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멀리에서나마 자신의 마지막을 미리 준비하시는 지혜로운 분임을 알았다. 시와 함께 걷는 조용한 시인의 뒷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시와 함께 했던 시간과 우리와 함께 자리를 지키셨던 시인께 진심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시인의 부재는 그의 시 속에도 침묵 속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그의 인품은 가신 후에 더욱 빛날 것이 분명하다.
한적한 철길 옆 빈 벤치에 우리는 앉아 있다. 눈 앞에 서 있는 기차에 시인이 타고 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기차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멀어져 가는 차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시인의 창백한 손바닥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우리도 함께 손을 흔들며 언제인가 내가 타야 할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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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