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2025-08-04 (월) 12:00:00
조형숙 시인ㆍ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종소리는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학교 스텝이 종의 나무손잡이를 잡고 아래 위로 흔들며 교실 밖을 한 바퀴 돈다. 청명한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다시 고요해지지만 여운은 가슴으로 들어와 침묵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시니어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목요일 아침이면 학교 마당이 술렁이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지난 일주일의 이야기로 따사롭다. 수업 시작 10분 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모두 서둘러 일어나 각자의 교실을 찾아간다. 교실에 도착한 학생들은 퍼즐처럼 제자리를 찾아 악기를 튜닝한다. 처음에는 튜닝도 스스로 할 수 없었고 코드도 손가락 번호도 몰랐다. 시니어들의 눈은 반짝이고 배울 것에 설레며 집중한다.
배움이 부끄럽지 않고 용기있게 질문을 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이유를 댄다. 핑계다. “손가락이 아프다. 관절이 좋지않다. 어깨가 아프다. 나이가 많아 따라가기가 힘든다. 손가락에 힘이 없어 코드가 잘 눌러지지 않는다. 코드를 빨리 바꾸기가 어렵다. 자꾸 잊어버린다.” 그 말 들에는 자신에 대한 작은 실망도 있다. “모두 잘 하고 계세요.” “틀려도 괜찮아요” “잘 칠 수 있어요”라고 해주는 말들을 즐기고 있다. 코드 하나가 살짝 틀려도 그냥 넘어가고 한 곡을 완성했다는 기쁨으로 자존심을 세워 본다. 처음엔 어색한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에 익숙해 간다. 손가락의 정성이 악기의 줄과 리듬과 만나며 노래도 함께 부른다.
삶의 감흥이 조금씩 기력을 잃어가면 달력의 빨간 글씨가 특별하지도 애틋하지도 않아 여느 날처럼 지나게 된다. 감흥이 줄어든다는 것은 많은 날 들을 지내왔고 같은 날의 반복이 있어 새록새록 의미를 찾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시대의 사람끼리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소통이 편안하고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동질감도 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되고 서로가 발전하는 기회가 된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클래스는 언제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가끔 서툴고 엇갈리는 실수가 있어도 눈빛 만은 젊은이 못지않다.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익숙해져 졸업 연주도 넉넉히 해낸다. 시니어대학 우쿨렐레 클래스는 웃음과 배움과 서툴음의 시간들이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수업의 끝에 오면 다시 종소리가 교실 앞을 한 바퀴 돌며 마침의 시간을 알린다. 끝자락은 따뜻하지만 서운하다. 종소리에 아랑곳 없이 “한번 더 해요”하며 헤어지기 섭섭해 한다. 배운 노래를 한 번씩 더 불러 보고 수업을 마무리 한다. 악기를 케이스에 넣고 악보와 보면대를 정리한다. 숙제를 다시 묻는다. 열심히 연습하라는 말 대신 “악기와 매일 대화하세요” 라고 말해 준다.
언제나 마주보고 만져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악기에 마음을 주라는 뜻이다. 숨을 고르며 악기를 메고 교실을 나서는 시니어들의 걸음에는 다음 시간을 준비하는 다짐과 설레임이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아름다움은 종소리 사이에 갖는 특별한 시간의 경험이다.
종소리는 멈춤을 알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의 울림 이기도 하다. 교실 밖으로 종소리가 다시 한 바퀴 돌면 일주일 후를 약속한다. “잘 가요. 수고했어요 ‘ 인사하는 화목한 시간이 종소리의 여운과 함께 멀어진다.
수업 마치고 난 교실 밖은 봄볕 아래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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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ㆍ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