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마음의 섬

2025-06-23 (월) 12:00:00 조형숙 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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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섬은 평온하다. 둥근 하늘은 너무 파랗지 않은 파스텔 색깔이다. 섬은 바다의 비밀을 깊이 알지 못하나 물고기들의 언어와 미역의 흔들림을 이해한다. 잔잔한 바람의 숨결과 온화한 파도의 노래를 듣는다. 사방 하늘이 움직이고 있다. 바람은 어느 해변의 모래가 부드러운지 어느 곳의 바람이 찬지 새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해질녘의 노을이 방안 가득하면 나도 함께 황금빛 왈츠를 춘다. 촛불 켜 놓은 저녁 창 가에 서면 밤하늘 수천의 별들이 총총 빛난다. 저 별이 다 내 것이 된 듯 가슴이 풍요롭다.

때론 조금 느린 듯 하다. 매일 바다소리에 해가 뜨고 바람이 웃고 새들은 노래한다. 같은 속도의 시간이 깊은 바다 소식을 가져와 파도와 함께 흘러 간다. 섬은 느린 여유도 즐긴다. 나의 색깔로 물들어져 누구도 들어 올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을 지킨다. 누군가 나의 섬에 오고 싶어 한다면 아마 아무도 들어 올 수 없게 하거나 맘에 딱 맞는 사람에게만 섬을 안내 할지도 모른다. 내가 꾸민 섬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어떤 밝고 고운 색일지 향긋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지 한 번 더 돌아본다. 누군가 나의 섬을 들여다 보고 있다면 나의 섬은 어떻게 비춰 보일까. 아직 내 안에 발견되지 않은 고유한 것이 있지 않을 까. 가끔은 혼자 지내는 시간에 단절된 듯 외로움이 스며든다. 외로움이 꼭 슬픈 것은 아니나 멀리서 들리는 뱃고동 소리가 깊이 와서 박힐 때가 있다.

바다 건너의 다른 것들과 소통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도 섬이 있다. 가끔 나도 그들의 섬으로 가고 싶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와 가슴 조이고 우박처럼 떨어지는 강한 빗방울이 지붕을 내려친다. 나뭇잎이 심하게 흔들리며 윙윙 울고 있다. 혼자 무서워 한쪽 구석을 찾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숨을 죽인다. 지난 번 벼락에 밑동만 남기고 꺾여 널브러진 나무를 혼자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를 채워가며 마음의 뿌리를 깊이 박는다. 나의 섬에서 강하고 당당한 눈빛으로 두려움 없이 살아가면 외로움이 사라지려나.


내 안의 섬은 화려하지 않다. 자연의 지혜를 깨우치고 바다의 침묵과 대화한다. 갈매기가 보여 주는, 구속 받지 않는 자유로운 날갯짓이 좋다. 조개껍질로 목걸이를 만들고 나만의 색깔로 그림을 그리면서 살다 보면 나의 섬은 단순한 풍경의 공간이 아니고 삶터가 된다. 속은 깔끔하고 겉은 단단한 오두막을 소중히 여기며 철저하게 꾸민다. 책상 위에 작은 일기장, 손으로 만든 달력, 잉크와 갈매기 날개로 만든 새털 펜, 작고 예쁜 화병에는 바다 꽃을 담았다. 소탈한 마음으로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큰 숨 쉬며 성장하고 치유 받으며 나의 섬에서 내 색깔을 지켜 나간다.

섬은 힘차고 멋있는 나의 생애가 된다. 가끔은 작은 일에 마음 상하고 세상에 맞설 힘이 없다고 느낄 때, 문득 한 쪽에서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자라난다. 나를 다시 만나는 순간 벌써 새로운 길에 서 있다. 내 안의 섬이 나약함의 순간을 밀어내 준다. 부족함이 성장의 도구임을 확신 할 때 내일의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나는 언제나 나 인 채로 완성되지 않은 속에서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하늘은 온 사방에 열려 있고 나무도 풀도 돌도 모래도 그대로인데 나는 매일 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조형숙 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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