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엇노래(사모곡)
2020-03-23 (월)
권초향(주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먹먹해지는 이름이 있다. 이 세상 태어나 제일 처음 배우는 말 ‘엄마’. 딱 일 년 전 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경험을 했다.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사랑 많은 나의 엄마.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내 편이 되어 지켜봐줄 거라 믿었던 엄마. 그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한국에서 수술중이라는 전화를 받고 숨을 쉴 수도, 물 한모금을 삼켜낼 수도 없었다. 쓰러지는 그날까지도 통화하며 안부를 주고 받았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도착해 의식없이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낯선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었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빠른 경과에 기적을 바라며 계속 기도로 매달렸다. 한달동안 병실을 지키며 간병을 했다. 누구에게도 흐트러진 모습 보이기 싫어하시던 그 맘을 알기에, 간병인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엄마의 모습은 신생아와 같았다. 엄마도 날 이렇게 키웠겠지라는 생각으로 그 시간을 함께했다. 엄마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식을 책임지는데, 자식된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의식없는 엄마를 병상에 두고 떠나와야만 했다.
쓰러지기 전 한달동안 엄마와 단 둘이 지낸 적이 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암시하듯 선물처럼 허락되었던, 엄마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며 보낼 수 있었던 시간. 한번도 궁금해하지도 들어본 적도 없던 엄마의 이야기. 전쟁을 겪으며 지나온 어린시절, 아빠와의 만남, 오빠와 나의 출산, 시집살이 등등 내가 알지 못한 엄마의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힘들지 않았냐는 내 말에, 그땐 다들 그렇게 살았노라고 웃으며 이젠 다 추억이라고 하셨다. 이젠 모든 것 잊고 꽃길만 걷자고, 맛난 거 많이 먹고 좋은 것 많이 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며 지난날들을 깔깔거리며 보내주었는데, 그 웃음소리가 채 마르기 전 마주잡았던 두손을 놓고 내 곁을 떠날 준비를하고 계신 듯하다.
엄마의 젊은 시절을 다 바쳐 만들고 키워낸 나는 이제 더 이상 욕심을 내선 안되는가 보다. 향아 부르던 그 목소리 한번만, 소녀처럼 웃던 그 웃음 단 한번만 나눌 수 있길 바랐던 나의 기도가, 이젠 더 이상 아픔없이 주님의 품안에 거하길 바라는 기도로 바뀐 이유는, 언젠가 우리 모두 가야 할 그 길 끝에서 다시 만날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땐 꼭 말해줄 것이다. 엄마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많이 많이 사랑해요.
<권초향(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