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회적 거리두기’란 지침

2020-03-23 (월)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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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마치 군대의 암호 같은 새로운 이름의 이 유행병이 중국, 한국을 벗어나 유럽, 미국 등 다른 대륙으로 마구 퍼져나가고 있다. 아시아에서 발병된 단순한 전염병(epidemic)이던 코로나19는 이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세계적 유행(pandemic)으로 선언되었다. 한국은 20일 현재 확진자가 8,650명을 넘어섰고, 더 이상 확진자 동선을 알아내 해당 구역을 방역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개개인이 면역력을 키우며 위생관리에 철저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수의 회사들이 내놓은 일시적 대응책 중엔 재택근무, 유연근무 등이 있어 처음에는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편한 복장으로 일할 수 있는 여유가 좋기만 했다. 점심식사로 뭘 먹어야 할까 고민 없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순간순간 짬이 났을 때 아이들과 혹은 다른 식구들과 오랜만에 길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이런 ‘집콕’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되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격리되어 바이러스 전염으로부터는 안전할 수 있으나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으며 삼시세끼 챙겨 먹다보니 살이 확 쪄서 ‘확찐자’가 되더라는 것, 또 그런 동선을 밟아보니 책상- 부엌- 냉장고- 식탁-침대 였다는 농담이 카톡으로 전파되는 것을 보니 사람들이 재택과 격리에 대해 하나둘 볼멘 푸념을 내놓는 듯했다. 금방 잠잠해 질 줄 알았던 이 상황이 한달 째 계속되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확진자 수를 체크할 때 마다 잠잠해 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제는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한다.바이러스 확산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더 걸리는 것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제한적 접촉, 그래서 생기는 커뮤니케이션 애로사항이다. 또 처음에는 소중하게 생각되던 가족과의 일상도 이제는 하루 종일 집에서 붙어 “지지고 볶다” 보니 아이들에게 오히려 잔소리만 더 해지고, 한참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왁자지껄하게 학교도 학원도 가야할 아이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요즘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문구에 모두 익숙해졌다. 이번 바이러스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 직격탄 같은 재앙이다. 사람들과의 모임을 자제하고, 최대한 육체적 접촉을 피하고, 가장 일반적인 인사법조차 악수 대신 다른 방법을 쓰라는 주의다.

이런 강력한 캠페인으로 이제 사람들은 서로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또한 자가 격리가 오래되고 여행 자제가 강화되다 보니 결혼식이나 장례식, 졸업식 같은 일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취소해야 되고, 참석하지 못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목숨을 앗아가고, 한번 걸리면 폐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 전염병은 정말 위험하지만 그보다 더 우려 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불신하고, 타 인종, 타 종교, 타 집단에 대해 갖는 선입견이다.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오픈마인드보다는 즉각적 의심과 두려움으로 대처하면서 점점 개인주의로 변해가는 양상이다. 앞으로 얼마동안 지속 될지 모르는 이 시기는 우리가 다시 한번 건강과 위생에 대해 배울 기회라 생각한다. 여러가지 추측과 불신으로 파국을 초래할 것이 아니라 진실과 올바른 지식을 지향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이 불안한 시국을 함께 극복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구절을 지금처럼 간절하게 바란 적이 없는 것처럼, 이 시기를 겪고 난 후 우리는 위기를 한층 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 있길 바란다.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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