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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만도 못한 언론

2020-03-1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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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거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경제를 비롯해 거의 모든 분야가 마비상태에 빠졌다. 국민들의 일상도 크게 달라졌다. 마스크는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됐으며,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 만남을 자제하고 다중이 모이는 집회와 회의, 회식 등도 피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의료진들 또한 방역 최전선에서 검사와 환자 치료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코로나19 감염자들이 신속히 확인되고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수치로는 계속 늘고 있지만 왜 그런지를 알고 있기에 일정 시간 지나면 확산세가 누그러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코로나19에 차분히 대처할 수 있으려면 이런 믿음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위중한 국가재난 상황에서 일부 언론은 오히려 이런 신뢰를 흔들기에 여념 없는 몰상식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방역 정책을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선동에 가까운 극단적인 주장들을 쏟아내 국민들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단은 사태를 조속히 수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일조해야 함에도 거꾸로 국민들의 불신을 부추기는 데만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사회의 마스크 대란도 이런 보도들이 부추긴 측면이 있다. 어떤 상황에 대해 불안을 조장하는 보도가 이어지면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 그런 면에서 마스크 대란은 언론이 초래한 ‘마스크 런’이라 부를 만하다. 그래서 언론은 재난보도를 할 때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야기 시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 보도준칙은 무시되고 있다.

언론은 임팩트를 추구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시선을 끌어 존재감과 영향력을 키우고 더 많은 클릭수를 유도하려 한다. 이런 속성에 더해 보수언론은 코로나19 재난을 4월 총선에서 집권세력에 타격을 가할 더할 수 없이 좋은 정치적 기회로 여기는 것 같다.

인간은 긍정적 메시지보다 부정적인 메시지에 더 빠르고 강렬하게 반응한다. 가령 의사들이 새로운 수술 방법을 권유하면서 “이 수술의 성공률은 90%”라고 했을 때보다 “수술 실패율이 10%”라고 했을 때 기피율이 훨씬 더 높아진다. 비슷한 내용인데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진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언론들이 비틀어 쓰기와 자극적 포장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더 사악한 케이스는 가짜뉴스들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사실 확인이 가능함에도 자기들 목적과 입맛에 맞는다 싶으면 ‘의도적인 오보’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중국 웨이하이시는 인천시에 20만장의 마스크를 보내왔다. 중국이 코로나19로 힘들어 할 때 자매도시인 인천시가 2만장을 보내준 데 대해 10배로 보은한 것이다. 미담거리가 될 만한 훈훈한 뉴스다.

그런데 한 언론은 인천이 받은 마스크들이 불량품으로 판명됐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인천시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코로나19와 싸우는 것보다 이런 가짜 왜곡기사에 대응하는 게 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일부의 일탈로만 치부하기엔 이런 악의적 보도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띈다. 언론의 공익성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해진다.

재난상황에서는 언론의 정확한 보도와 시민들의 차분하고 성숙한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모두가 서두르게 되면 오히려 모두가 늦어지게 된다. ‘서두를수록 늦어지는 현상’(faster is slower)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객기 비상상황에서 승개들이 먼저 나가겠다며 서로 밀치고 싸우게 되면 탈출은 늦어지고 피해는 더욱 커지게 된다.

마스크 대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며칠 전부터 한국에서는 SNS를 통해 ‘마스크 안사기’ ‘마스크 양보하기’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만에서도 지난 2월부터 ‘나는 OK. 당신 먼저’라는 마스크 양보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마스크 수급문제가 원활해졌다.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이 빛난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문재인 정권을 흔들어야 한다는 일부 언론의 강박과 정략적 의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언론이라면 국가재난 앞에서 본령을 우선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언론이 성숙한 시민들의 반만 따라가도 코로나19 퇴치는 훨씬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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