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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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시간 여행

2020-03-10 (화) 권초향(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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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 여행이 허락된다면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About Time’이라는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 집안의 남자들은 어두운 곳에 들어가 주먹을 쥐고, 되돌아가고 싶은 시간을 생각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다. 연애도 가족의 아픔도 이 시간 여행을 통해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가 해결하곤 한다. 하지만 시간 여행을 통해 바뀐 과거는 결국 미래가 된 현재의 상황도 바뀌게 만들었다. 만약에 나에게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돌아가고 싶은 시간은 언제일까? 시간을 되돌려 내 삶 속에서 포기했던 그 무언가를 다시 선택한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모든 삶은 늘 어떤 선택으로 무언가를 포기하며 살아온 결과의 산물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시간 여행에서 찾은 답은, 똑같은 하루를 두번씩 살아보라는 비밀공식이었다. 나 또한 답을 찾아 시간 여행을 하듯 뒤로뒤로 걸어 그 시간을 다시 들여다본다. 힘들고 아프게만 느껴져 기억 저편에 묻어 되돌리고 싶지 않았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살아본다. 내가 해왔던 선택과 다른 선택을 해 살아보지만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 선택의 결과로 현재의 내 삶은 변화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 시간 여행을 하다 보니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 보게 되었다던 고은 시인의 글이 깊게 공감되었다. 힘들고 피하고만 싶어 되돌리고 싶었던 과거의 상황들 속에서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해 놓쳤던 작은 기억들이 다시 소환되어 소중함마저 느끼게 해 주었다. 행복했던 기억으로 다시 내게 되돌려 주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함으로 포기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만을 채워 나가는 시간여행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여행이였음에 감사하다.

굳이 먼 시간 여행을 떠날 것도 없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옛날 앨범을 보지 말라는 충고를 뒤로하고 자녀들의 어린시절 시간 여행을 해본다. 나의 갱년기에 대적하며 거친 사춘기를 지나는 잠든 둘째의 모습조차 눈물나도록 사랑스러워지는 마법이 펼쳐진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지는 마법은 비단 나만의 당황스러움은 아닐 것이다.

<권초향(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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