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짐승의 구별점 중 하나는 외모이다. 사람의 머리는 하늘을 향하지만 짐승의 머리는 땅을 향한다. 이는 사람은 하늘을 소망하지만 짐승은 땅에 매여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또 꿈의 유무에 있어서도 구별된다. 사람에게는 꿈과 비젼이 있지만 짐승에게는 꿈은 애초에 없고 본능만 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이 꿈을 품고 꾼다. 사람의 꿈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성공에 대한 꿈이며 다른 하나는 위대함에 대한 꿈이다. 성공과 위대함은 다르다. 성공은 자신의 재능과 힘, 수완을 가지고 남들과의 비교, 경쟁을 통해 자신이 계획하고 목표했던 것을 이루고 공로를 쌓은 것을 뜻한다. 성공에는 대부분 개인적 욕망이 서려 있다. 욕망이 불어나듯 성공은 외형적으로 더 크고 더 많아야 한다. 성공은 부피, 질량, 통계, 수치등에 비례한다. 반면에 위대함은 인격과 덕, 은혜를 쌓아 내면의 가치, 성취, 풍요함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위대함은 믿음, 인격, 신뢰, 성실함등에 비례한다. 성공은 세상사람으로부터 찬사, 갈채를 얻게 하지만 위대함은 감화력, 영향력을 끼치게 한다. 성공이 욕망의 산물임에 비해 위대함은 꿈의 산물이다. 욕망은 살아있는 자를 죽게도 만들지만 꿈은 죽어가는 자를 살게도 만든다. 성공은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곧잘 흔들리지만 위대함은 어떤 환경에서도 굳건히 버틴다. 성공은 성취, 공적의 흔적이 있는 제한된 사람만이 얻을 수 있지만 위대함은 인격과 믿음을 갗춘 자라면 누구에게나 합당하다. 모두가 워렌 버핏같은 부자, 트럼프대통령같은 권력자, 방탄소년같은 가수, 빌리 그레햄같은 부흥사가 될순 없지만 무명인이어도 꿈, 인격, 믿음, 성실함이 있으면 위대한 사람이 될수 있다. 위대함은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만들어진다.
예수님의 표준은 성공이 아니라 위대함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예나 지금의 세상기준으로 볼 때 결코 성공적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큰 재력가가 아니었다. 몸 두실 거처가 없었고 자신의 무덤조차 없었다. 그분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를 따르던 제자 수는 단 12명뿐, 게다가 한명은 배신했다. 예수님은 유력 교단장이라던가 굴지의 대형교회 담임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 흔한 책 한권도 저술하지 않았다. 단지 제자들에 의해서 신약성경만을 남겼다. 헌데 성경은 세상적으로 성공치 못한 예수님을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기술한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앞에 무릎을 꿇는다 했다. 성경뿐아니라 세계역사도 예수님을 세상을 빛낸 공자, 소크라테스, 씨저, 마호멧, 와싱턴, 나폴레옹보다 훨씬 더 위대한 자라 칭한다. 귄위있는 웹스터사전은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면서 무려 2만여 단어를 할애한다. 이는 위의 여섯 위인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이다.
위대함의 근거들은 무엇인가 ? 겸손이다. 하나님은 그가 누구이던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그가 누구이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높여주시는, 즉 위대케 하시는 은혜말이다. ‘주앞에서 낯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높이시리라’ 했다. 또 섬김이다. 세상기준으로 큰 자는 많은 사람위에 군림하고 감독 관리하고 다스리는 자이다. 허나 주님의 기준으로 위대한 자는 주고 섬기는 자이다. 주님은 “너희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뜻을 행함이다. 예수님은 큰 자와 작은 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큰 자, 위대한 자는 온 인격을 바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 하셨다. 주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자라는 뜻이다. 주님계명은 온전하고 위대하기에 그것을 행하는 자도 위대함에 도달한다.
주님 표준은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위대함이다. 길가에 구르는 돌까지 도구로 쓰시는 주님은 인격과 믿음을 갗춘 위대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런 자를 만나면 지체없이 쓰신다. 세상역사도 위대한 사람들에 의해서 다시 쓰여지고 새롭게 건설되어진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 겸손과 섬김, 주의 뜻과 계명실천을 통해 위대함에 이르시라. 위대한 자로 인해 위대한 가정, 위대한 교회, 위대한 사회, 위대한 국가가 건설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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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