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삶의 분갈이
2020-03-03 (화)
권초향 (주부)
화분에 든 식물을 키우다 보면 봄이 오기 전 항상 의식과 같이 하는 일이 바로 분갈이다. 새 흙과 기존의 흙을 섞어 식물 하나하나를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옮겨 다시 심는 것이 보통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여러가지 식물을 키우고, 매번 분갈이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적당한 빛과 물을 주면 잘 자라겠거니 했다. 그런데 화분 몇 개를 키워보니 식물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분갈이를 하지 않은 화분은 통풍이 안되고 물이 고인 채로 흐르지 않아 뿌리가 썩어 식물이 잘 성장하지 못하거나 고사했다. 흙 사이의 공간이 비좁아져서 뿌리를 죄고 흙이 산성화되어 성장에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키웠다고 생각하는데도 잎이 생기를 잃고 시들시들해지거나 열매를 맺지 못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빛과 물도 중요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땅을 숨쉬게 해주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분갈이를 하며 시든 잎들을 떼어내 정리하고, 뿌리 하나도 상하지 않게 조심하며 좋은 흙으로 준비해주는 이유는, 화분에 담긴 식물이 더 건강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렇게 정성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꽃 피우지 못하고 오랜 시간 애태울 때도 있다. 하지만 계속 포기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다 보면 그 사랑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식물은 건강한 잎으로, 예쁜 꽃과 열매로 보답한다. 그 기다림과 정성은 화분에 담긴 식물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비단 식물에게만 해당되는 분갈이는 아니다. 우리의 삶에도 분갈이가 필요할 때가 있다. 삶의 큰 변화를 앞두고 어떤 꽃을 피울지,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안고 삶의 분갈이를 계속해야만 한다. 나의 삶 속에서 지금까지 해온 분갈이의 수고스러움에 비해, 씨앗으로 시작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들과 열매로 기쁨과 감동을 주었던 수많은 결실들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이 기쁨의 감동을 나누기까지 겪었을 인고의 시간을 우리 함께할 수 있었기에 봄을 앞둔 지금 난 또 한번 삶의 분갈이를 준비하려 한다.
<권초향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