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먹거리에 대한 생각

2020-03-02 (월)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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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먹거리가 많았던 한국에서의 설 연휴를 보내고 돌아와 먹거리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비염 때문에 먹는 한약으로 먹을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먹거리 환경에 관한 것이다.

원래 있던 비염이 심해져 작년 봄부터 수면 중에도 코가 막혀 중간에 깨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으면서 한국을 다녀올 때마다 한약을 지어서 먹고 있다. 한약에 든 어떤 성분이 비염을 완화시켜주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약을 먹는 동안은 코 막힘 현상이 현격하게 준다.

하지만 한약을 먹는 동안에는 ‘닭’ ‘돼지’ ‘숙주’‘면류(밀가루)’를 먹지 못하다 보니, 일정기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먹거리 품목이 현격하게 줄게 된다.


무수히 많은 식재료 중 네 가지 못 먹을 뿐인데, 내가 일상적으로 사먹고, 해먹던 음식들을 즐기지 못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건(계란 및 유제품도 먹지 않는 사람)등 채식주의자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먹거리가 한정되어 여러모로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람들은 보통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안 먹는 식재료나 음식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먹거리에 큰 제약이 없는 편이다. 한편 업무로 외국인들을 모시고 한국에 출장갈 경우 종교적, 문화적 혹은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음식에 대한 제약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이들이 한국에서 느꼈을 불편함이 새삼 떠올랐다.

한국에 외국인들을 모시고 가면, 미팅과 현장 견학 일정 조율만도 바빠서 음식까지 신경을 쓰는 게 피곤했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알아서 찾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던 내가 새삼 부끄럽게 느껴졌다.

휴가 중 부모님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미국과 비교해 한국의 식재료들이 너무 신선하고, 먹거리들이 훨씬 건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미국에 돌아온 후에도 좋은 것만 모아서 판다는 홀푸즈에 가서도 한국 식재료들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미국에서 쉬지 않고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올 여름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카자흐스탄 출신 우버 기사가 있다. 그는 본국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미국은 유기농과 비 유기농을 구분하고 홀푸즈 같이 더 좋은 식재료들을 모아 놓고 파는 마트가 따로 있다며 이상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것만 봐도 미국의 먹거리 환경이 뭔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된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에서 살다 한국에 귀국했을 때 맥도널드와 피자헛 같은 패스트푸드가 몹시도 먹고 싶었다. 명절 때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면 그 좋은 명절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틈만 나면 패스트푸드를 찾았다. 그런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의 비염 그리고 유독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앨러지가 잘 생기는 게 단순히 풍토가 달라서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더욱 든다.

미국에서 말하는 로컬 푸드는 같은 주 혹은 400마일 거리 안에서 재배 판매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웬만한 작은 나라들 경우에는 국경을 넘어가는 거리이니 미국서 먹는 먹거리의 신선함을 기대하는 자체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나이 들수록 챙겨야 하는 건강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찾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라는 곳의 먹거리 상황이 열악해서 신경을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요새 먹거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 장을 볼 때도 원산지와 식품 영양정보를 읽어보게 된다.

30대 초중반의 또래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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