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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특별함에 대한 오해

2020-02-27 (목) 전윤재(오클랜드 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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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사명을 띠고 그 사명의 완수를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정확히 말하면 누가 나를 앉혀놓고 이런 이야기를 심각하게 했다는 말은 아니다. 학교에서 내 또래들과 함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매일 아침 국민헌장을 읊조리는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인데, 너무 어렸던 나는 이런 엄청난 사명을 지고 태어난 것이 나라면 나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는 비논리적인 결론을 내렸고 특별함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쓰며 살았다는 얘기를 해보려는 것이다.

나는 특별함이라는 것을 일등이 되고 최고가 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딱 한자리였던 특별한 일등의 자리에 앉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일등이 되면 기뻤고, 이등이 되면 슬펐고, 삼등이 되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등이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을 해도 일등이 되는 일은 요원해져 갔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삼등의 자리는 꿈처럼 아련해져만 갔다. 나의 시간은 만족감보다는 외로움과 씁쓸함으로 채워져 갔다. 특별함이라는 것이 관습이나 제도, 가치관 등 어떤 일정한 기준으로 측정가능한 가치라고 오해한데서 빚어진 결과였다.

특별함을 아는 것은 유일무이한 상태에 대한 지각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대상을 수직적으로 줄세우는 시도를 멈추고 세계를 수평적, 개별적으로 확장해 바라보는 태도를 갖는 일이다. 이것은 특정한 조건이 나를 특별함이라는 상태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가 나의 특별함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총족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니 일등이기 때문에 최고가 되고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다. 특별함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특별한 일등의 자리가 딱 한자리인 것처럼 이등도 삼등도 특별한 딱 한자리이며, 이름이 다를 뿐 그 자리들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믿을 때에만 가능하다.

특별함은 비교를 통해서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특별함은 주어진 상황에서 만나는 대상들을 있는 그대로 눈에 담고 마음에 담으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은 지난날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나로 인해 완수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더 이상 나란 존재의 특별함이 타격을 입을 것 같지도 않은데 이것은 특별함에 대한 오해를 풀길 참 잘했다는 얘기다.

<전윤재(오클랜드 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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