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미스터 트롯
2020-02-22 (토)
정보경(연방정부 컨트렉터)
작년 12월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 SF 콘서트를 보기 위해 휴가까지 낸 막내가 집에 왔다. 딸이 좀 심하다 싶었지만 어찌하랴 이것도 딸의 삶인데 하며 마지못해 수긍했다. 어릴 적 좋아했던 가수의 로고가 붙은 가방을 찾느라 박스를 헤집어 놨았던 막내딸은 집안만 잔뜩 어질러 놓고 콘서트장으로 떠나버렸다. 10대 때 딸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LA나 SF에 오면 어김없이 딸들을 콘서트장으로 라이드해줬다. 직장 다니기도 바쁜 내가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며 딸들의 팬덤 형성에 일조했다. 열광적으로 좋아해본 가수 없이 사춘기를 지나는 건 왠지 허전한 일인 것 같기도 해서였다. 그런데 최근 우연찮게 ‘미스터 트롯’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10대 때도 가지지 못한 팬심이 생겼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땜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임영웅이라는 청년이 엄마를 생각하며 부른 ‘바램’이란 노래를 처음 들었다.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아들을 키운 어머니를 향한 감사함을 담담히 노래로 풀어내는 그 모습에 매료돼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특히 가슴에 와닿았던 가사말은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는 부분이다. 트롯은 뽕짝이라며 부모님이나 이모나 삼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 치부했었다. 한스럽고 구슬프며 청승맞은 트롯 가락을 좋아하지도 않았던 내가 이렇게 트롯 프로그램을 보며 위안을 받는다. 노래 경연자들은 풍부한 성량과 노련미, 때로는 남성다우며 애절하게 각자의 달란트를 드러내며 도전에 참여한다.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마다 절묘하리 만큼 완벽하게 표현해낸 임영웅 참가자가 부른 바램처럼 트롯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이제 ‘미스터 트롯’을 통해 늙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됐다.
<정보경(연방정부 컨트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