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존재한다.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때론 드라마나 소설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문제들을 갖고 찾아오곤 한다. 그 중에서 가족 간의 돈 문제로 소송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제일 곤혹스럽다. 돈 앞에서 서로 원수가 된 상황은 승소와 상관없이 모두가 다 패자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억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반드시 소송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정이나 이웃 간에 서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싸움이 일어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소송을 하는 경우도 많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잘못은 있을 수 있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감정이 폭발하고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I‘m sorry” 를 남발하는 민족이다. 길을 가다 스쳐도, 별로 잘못하지 않은 일상에 매사 “I’m sorry” 를 불러댄다. 언뜻보면 예의가 참 바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잘못을 부정한다. 즉 피상적인 인간관계나 타인의 프라이버시에 있어서는 예의를 잘 지키지만 그것이 본인의 금전적인 이익에 관해서는 절대로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함을 첫번째 덕목으로 삼는 기독교의 사상에서 출발한 서양문명이 무색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양인은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화 대혁명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중국 공산당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무지막지하게 숙청을 자행하기 때문에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게 됐다고도 한다.
다만 동양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기본적인 생각이 관계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불편해하면 먼저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풀어가는게 보편적이지만 서양의 문화는 먼저 잘잘못을 따진 다음에 누가 미안해할 지를 결정하는 점에 있어 문화적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사실 소송관계에 있어서도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치명적으로 승소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잘못한 일이라도 일단 잡아떼고 보아야 한다. 의뢰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도 변호인이 못하게 한다. 오죽하면 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받는 형사재판에서조차 피고인은 공식적으로는 유죄(Guilty) 인정을 하지 않는다.
No Plea 을 주장함으로서 검사의 기소내용에 이의가 없다는 표현으로 슬쩍 비켜나갈 뿐이다.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존심의 상처일 것 같다. 경험과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은 항상 옳고 잘못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지적을 당하면 분노한다.
반면 자신에게 자신없는 열등감 많은 보통 사람도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자기 혐오에 빠질 수 있으므로 무의식적이라도 잘못한 일에 변명을 하면서 정당성을 주장한다. 결국 실력이나 능력의 여부를 떠나 누구든지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렇듯 인간본성이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려드니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옛 여러 성인들이 종교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죄의 본질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공자는 사람과 사람 간에 대하는 죄, 즉 자연의 이치를 벗어난 무모한 행동을 죄로 인식했다. 양보하고 예의를 지키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 속으로 반성하는 자세를 인생과 죄의 해법으로 보았다. 서로 “내 탓이요 하면서 싸우지 말자” 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무난할 것 같다.
선악의 구분이 있고 삶의 고찰이 있다는 불교계의 요즘 가장 인기 많은 법륜스님은 죄에 대해 무어라 하는지 궁금하다. “세상의 잣대가 어떻게 흐르든 나만의 관점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동해라”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주장인데 “똥이 방에 있으면 오물이지만 밭에 갖다 놓으면 거름이 된다” 라는 식이다. 어렵다! 아무래도 내가 스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무신론자나 진화론적 철학자들은 인간 존재의 이유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진화한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에 존재는 그냥 있는 것이고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냥 살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인간이 세상에서 살 동안 가장 행복하게 살겠다는 목적을 갖고 행동하는 것에 아무런 비난할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라고 주장한다. 마치 트럼프가 ‘미국만 잘 살 수 있다면 다른 나라의 고통이나 불행에 대해서 모른 체 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이냐?’ 라고 따지는 것과 같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죄나 잘못은 그 범위가 타 종교나 철학보다 훨씬 넓다. 죄는 단순히 이웃에 대한 악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멀리한 죄까지 포함된다. 즉 단순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웃에 행하여진 악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장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개인의 행복’ 자체가 잘못된 죄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면…
너무한 것 같다. 비록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인생의 목표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왕 태어났으니 불행보다는 행복이 낫겠다 싶어 뭐든지 열심을 다해 살아 보겠다는데.
도둑질 안하고, 오히려 타인의 불행에 대해 동정도 하고, 선한일 하려고 애도 쓰고, 사회에서 무시 당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과 재산을 모으기에 힘썼고, 불의에 대해 목숨을 바치고 항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불의를 보면 울분을 토하기도 했는데, 특별히 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악하지도 않았던것 같은데…물론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살았지만 그래도 남에게 큰 피해 안입히면서 적당히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던 우리의 삶과 행동들이 하나님으로부터는 전혀 인정을 못받을 일이었고 심지어 “헛되고 헛되며” 용서받지 못할 대역죄 라고 하니 영 기분이 씁쓸하다 .
그럼 죄를 짓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후세든 천국이든 갈 때 가더라도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만큼은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행만은 최소화 하고 싶은 우리 모두의 고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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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에스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