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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상식의 나라

2020-02-06 (목) 전윤재(오클랜드 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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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상식이 있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나라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요구는 너무 비상식적이지 않나요?” 내 맞은편에 앉은 분이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분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요구’의 내용을 들어보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나도 ‘이런 요구’를 하면서 살아왔고, ‘이런 요구’를 받는 입장이 되었을 때는 선선히 그 요구를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분의 기준에서 나는 비상식적인 인간이다. 나는 상식의 나라가 생겨도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묻는다. “어때요, 윤재씨? 그런 나라 만들어서 우리 같이 가요!” 내가 자격미달이라는 사실을 이분의 상식은 걸러내지 못한다.

상식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상식이 도대체 무엇이냐 생각해보면 딱 이렇다고 대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상식에 대해 말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상식은 특정 시간과 특정 공간이 만나는 좌표 위에 존재하게 된다는 점 정도다. 즉, 시간이 달라지거나 공간이 달라지면 기존에 상식이라고 찍어두었던 좌표의 값은 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상식인 것이 반드시 미국에서 상식일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상식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이라는 변수만 가지고 생각해봐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상식에 개인이라는 변수를 더해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개인은 각자의 독특한 경험과 개별적 역사라는 변수를 들고 상식의 좌표 찍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상식은 이제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변주를 생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헤아릴 수 없는 변주가 사실은 같은 소리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린다. 내가 알고 경험한 것이 상식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이 세계를 관통한다고 믿는다. 상식을 이유로 다른 이들을 비난하는 일이 타당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세계를 관통하는 상식을 찾아냈는데,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결과가 타인에 대한 비난과 힐난이다. 무엇을 위해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인가. 그런 상식은 어디에 쓸 것인가.

상식의 나라에 초대를 받는다면 나는 정중히 거절할 생각이다. 화가 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길 때도 있지만 현재 내가 사는 이 다이나믹하고 예측불가능한 세계가 상식의 나라보다 매력적이고 재미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전윤재(오클랜드 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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