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북한 개별 방문 허용 검토’ 내용은 매우 기발하고 당돌한 쇼크로 받아들여진다. 최근의 평탄하지 않은 남북한 분위기를 볼 때 개별 자유방문 허용문제를 놓고 사전 내통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아 궁금증이 증폭된다. 총선거를 앞두고 즉흥적으로 한 건 올려놓은 것이라면 이 발상이야말로 경솔한 불장난이 아닌가 싶다. 문재인 정부의 북한 측량 수준이 단박에 질려온다.
남북한의 활발한 교류 왕래를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 자체에 토를 단다는 것이 다소 외람되기도 하지만 복잡한 한반도의 불행을 풀어가는 과제인 만큼 신중과 침착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는 우리 모두가 가슴을 치고 있는 바와 같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시련에 빠져 있다. 정작 우리를 쪼개 놓은 강대국들은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핑퐁외교로 모택동과 화해, 1971년 외교 관계를 수립했으며 일본도 재빨리 다음해인 1972년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소련 붕괴 후 그 위성 국가들도 쿠바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자유화되었음은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고 있는 처지이다.
민주, 공산 양 진영의 격돌로 전쟁터가 되었고 가장 많은 생명과 재산을 잃고 민족의 본질성마저 처절하게 파괴당한 우리들이 아닌가. 그러고도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무슨 대가를 원하는 건지 우리는 아직도 통일을 못하고 서로 물고 찢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역설했다. 모두가 자신의 영혼을 쓰다듬고 돌보라는 그런 의미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을 외세에 시달려 오기만 했던 탓인지 ‘민족혼’이 지금도 방황하고 있다. 민족이 통일로 향한 공통분모를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장기집권, 파벌주의, 사리사욕 등의 흉계를 품은 타락한 보수, 진보의 진영논리에 취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 일가 왕조 수령 제일주의 고착화가 한층 더 민족을 좌절시키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는 한 쪽에서 네가 빨갱이가 아니라면 김정은 욕을 해보라고 한다. 네가 수구꼴통이 아니라면 미국을 비난해 보라고 한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향해 “네가 하나님이라면 저 높은 성에서 뛰어 내려 보라”라든가 “네가 하나님이라면 이 돌멩이로 떡을 만들어 보라”라는 식의 억지 이념논리에 결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북한 개별 방문 허용검토’는 남북 국민들의 눈높이로 볼 때 확실한 과속이다. 남한으로 넘어온 3명의 괴한들이나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한 동포를 살인자로 몰아 심도 있는 조사도 없이 당일 즉시 북으로 돌려보내는 기이한 안보태도를 보고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과 같은 남북의 이념혼란, 극한 대립 속에 우리 정부의 북한 개별 방문 허용 검토는 결코 순진한 눈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북측에선 인민들에게 자유로운 남한방문을 허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먼저 북한 자유방문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대북공세인가, 아부인가, 관광비용이란 푼돈으로 북한경제를 돕자는 심산인가. 분명한 지표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특이한 체제 아래 독특한 규율과 질서로 지탱하고 있는 사회다. 따라서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남한 스타일의 자유화 물결일 것이다. 남한의 관광객들이 북한에 들어가 돈을 뿌리고 노래방 술집을 찾고 함부로 말하며 함부로 행동하는 그런 돌발 분위기를 소화시킬 수 있는 준비가 안 된 사회다.
북한에선 김일성 사진이 실린 신문지 위에 실수로 구두를 벗어 놓았다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다. 미국 청년 웜비어는 성경책을 들고 북한에 들어가서 법에 걸려 고문 당하고 초주검이 되어 돌아와 결국 숨졌다. 남한 관광객이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그들에게 트집 잡혀 다수가 인질 상태로 고초를 겪는 불상사가 예측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북한은 남한 적화야욕을 멈추지 않고 있는 정권이다. 남한의 자유방북 공세에 의표를 찔러 역공을 취해 올 것도 예상된다. 남한의 방문객을 제한적,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치밀한 사상교육, 세뇌공작 프로그램으로 대응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 포섭, 세뇌 당하고 자신도 모르게 친북 요원이 되어 돌아 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김정은 초상화를 집무실에 걸어놓고 친북 찬양가를 부를 때 우리 실정법 저촉 여부는 정리가 되어 있는 지도 궁금하다. 일반인 방북은 이산가족 상봉, 체육, 문화교류 등 일정한 관리 아래 진행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방북 자유화 추진은 남북한 양측의 혼란만 초래할 헛발질로만 보인다. 남북문제에 관한 한 민족의 눈높이를 늘 존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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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