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인다. 세찬 소용돌이처럼 이는 분노에 눈도 못 뜨고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지난 22일에 시작되었다. 민주당 의원이 탄핵 사유를 발표하는 동안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조는 의원,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고 있는 의원, 아무리 설득력 있는 사유를 제시해도 귀와 마음을 닫은 이들에겐 시간 낭비일 뿐이다. 정당의 이익, 그에 부합한 자신의 이권만 생각하는 이들.
모국 소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조국과 그의 가족 비리를 시작으로 청와대를 겨냥해 수사해 오던 검사와 그 팀은 대통령이 임명한 새 법무부 장관에 의해 해체되었다. 정권마다 되풀이되어 온 부정과 부조리가 촛불 혁명으로 시작된 이번 정권은 다르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철저히 무너졌다. 대통령과 그 측근이 벌이는 비리를 실감나게 그린 ‘베가본드’ 드라마보다 더 절망적이다. 불사신처럼 끊임없이 일어나서 다시 싸우는 주인공이 없는 현실인지라.
이런 암울한 뉴스가 전해지는 동안 스위스 다보스에선 50주년을 맞은 세계경제포럼, 일명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행사가 열렸다.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해온 기존의 자본주의와 다른 모든 이해관계자인 직원, 고객, 환경 등을 고려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이번 행사의 주요 주제였다. 행사 관련 뉴스에 함께 나오는 하얀 눈에 싸인 스위스의 풍경은 동화 속 세상처럼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하다. 살기 좋은 국가 1위로 항상 꼽히는 스위스.
몇 년 전 워크숍에서 점심을 먹으며 여러 나라에서 온 참석자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부탄 출신이 자신을 소개하자 우간다 출신 데이비드가 그곳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낀 내륙에 갇힌 나라”라고 소개하자, 데이비드는 우간다도 케냐와 남수단, 콩고 등에 둘러싸인 내륙에 갇힌 나라라며 “내 나라에선 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 바다를 끼고 있어야 하는데 우간다는 내륙에 갇혀 있어 못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때, 인도 출신 동료가 “스위스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삼국에 둘러싸여 내륙에 갇힌 나라지만,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아니냐?!”고 했었다.
스위스의 비결이 무얼까 찾아본 결과, 영세중립국, 창의성과 개방성 등 다양한 원인 중 나는 그들의 독특한 민주주의에 주목한다. 스위스엔 대통령이 없고 일곱 명으로 구성된 내각에서 돌아가면서 의장 역을 하고, 의회를 통한 간접 민주주의에 더하여 국민이 직접 안건을 제기하고 투표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한다. 26개 주로 구성된 연합국으로 지방분권이 잘 이루어져 있고, 지방자치는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현안을 제기하고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원활히 이루어진다.
민주주의는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표현했듯이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이다. 하지만, 인민은 쉽게 선동되고 타락하고 그렇게 민주주의는 붕괴될 위험성을 상당히 안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선동된 인민의 민주주의 실패는 면면히 증명되어 왔다. 2천 년 전 예수를 못 박아 처형하라 외친 민중, 20세기 인민의 히틀러 추대, 21세기 경제가 초토화된 베네수엘라에도 집권 세력과 그의 지지층 인민은 여전히 환호한다.
정당과 자신의 이익만 챙기며 추락하는 간접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모든 이가 쉽게 안건을 내고 투표해 의사반영을 투명히 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ID 발급, 디지털 투표뿐 아니라, 부정부패로 얼룩져온 남미에서는 지역 정부의 공적 자원 할당 및 공공서비스 의사결정 등에 블록체인을 도입해 투명성을 높여나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 개개인이 깨어 참여할 때만 민주주의를 구해낼 수 있다. 양날의 칼과 같은 테크놀로지는 베네수엘라처럼 전제국가의 충실한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바싹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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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 맥클린,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