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인

2020-01-20 (월)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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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은 관광보다 누군가의 일상 속에 들어가 함께 삶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일상으로의 여행은 사람들의 연륜과 독특한 버릇, 그리고 매일을 살아가는 자세에 동참하여 대화와 관찰을 통해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게 한다. 이번 겨울방학은 80세 생신을 맞이하신 척 교수님의 일상으로 초대된 소중한 기회였다.

척 교수님은 석사과정 중에 한국에서 만난 미국인 교수님이다. 65세에 은퇴 후 부인과 함께 한국 방문교수로 와서 영어 논문과 원자력 과목을 가르쳤다. 당시에 나는 교수님과는 전공도 성향도 맞지 않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척 교수님과 친목을 유지하던 친구들의 초청으로 덩달아 교수님 댁에 머물며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나마 동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수시로 한국에서의 삶을 기억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푸셨다.


척 교수님은 거인이다. 키가 무척 커서 한국에서 불편했다고 한다. 내 기억 속에 교수님의 키는 단연 돋보였다. 멀리에서도 교수님이 어디 계신지 항상 알 수 있었고 교수님은 키만 큰 게 아니라 발도 커서 신발과 옷은 항상 맞춰 입었다고 한다. 한국의 어떤 기성제품도 그의 체격을 담을 수 없듯, 이야기 속의 교수님의 삶의 여정도 그러했다.

한국에서 척 교수님 부부는 해외에서 온 외국인 박사와 박사후 과정 부부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셨다. 한국에서 첫 아이를 낳은 파키스탄 부부의 아이를 봐주셨고, 이란, 방글라데시 부부와 함께 크리스마스 파스타를 드셨다고 한다. 겨울과 여름방학 텅 빈 캠퍼스에서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셨다. 사모님은 “외국인 숙소의 첫 트리는 우리가 설치했지.”하며 싱긋 웃으셨다.

70대에 교수님 부부는 미국에 돌아와 여전히 이민자들의 이웃이 되어주는 삶을 사셨다. “중국 국적의 내 딸과 손녀야.” 크리스마스에 잠시 방문한 중국인 부부가 교수님을 부모님 같이 대하는 걸 보았다. 부부가 맞벌이로 바쁠 때 교수님 부부는 그들의 아이를 봐주셨다. 또 그들이 미국대학원의 석사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영어를 도와줄 뿐 아니라 취업도 함께 힘써 주셨다.

교수님은 부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부를 갖고 계셨다. 내가 머무는 동안 교수님은 말라위 가뭄 소식과 굶어죽는 9세 아이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사모님과 급한 도움 요청에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논의하셨다. 교수님 댁의 커피메이커는 고장나서 작동되지 않았지만, 냉장고에는 교수님이 지원하는 9명의 과테말라 아이들 사진이 걸려있다.

81세의 생일을 맞은 교수님은 예전에 비해 키가 반이 되셨다. 허리와 다리 신경에 마비가 와서 전처럼 우뚝 서있거나 혼자서 이동할 수 없다. 많은 시간 앉아서 책을 보거나, 의자와 벽을 지지대로 이용하여 짚고, 고개와 허리를 숙여 벽을 짚고 이동하거나, 외부에서는 전동차를 타야 했다. 예전에는 교수님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이야기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기 좋은 높이로 교수님의 육체는 낮아져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여전히 거인이었다. 젊은 시절, 큰 키로 누군가의 표지판이 되어준 것만큼이나 삶의 배경이 되어주고 이정표가 되어 함께 삶을 사셨다. 그리고 넉넉한 품의 부자로 살고 계셨다.

이번 일상으로의 여행은 80평생을 살아온 노교수님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거인이 무엇인지, 이웃이 되어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자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확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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