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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내리사랑

2020-01-18 (토) 안세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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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시간을 내서 미용실 한번 가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머리를 하는 시간은 길게 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고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나에게는 큰 외출이 될 수 밖에 없다. 첫아이를 출산한 뒤부터 둘째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동네에서 머리를 잘라주시는 분에게 항상 머리를 잘랐다. 무엇보다 빨리 자르고 오는 게 목표이다 보니, 원하는 스타일이며 유행하는 스타일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컷트를 받고 드리는 댓가는 20불. 저렴한 가격에 그래도 꽤 만족하며 항상 컷트를 부탁드렸었다.

모처럼 친정부모님이 미국에 와 주신 날. 엄마는 업고 있는 아기에게 방해라도 될까 그렇지 않아도 짧은 머리를 더 짧게 달랑 동여매고 있는 내가 너무 안쓰러우셨던가 보다. 또 일본에서 잘 꾸미고 큰 회사를 다니던 딸이 이렇게 살고 있으니 속이 많이 상하셨나 보다. 날 잡아 제대로 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좀 하고 오라셨다. 그런데 미용실을 예약하는 순간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직장 다닐 때는 헤드 스파를 매주 다닐 정도로 누군가 내 머리를 만져주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어느 때부터 그 좋았던 느낌을 잊고 있었나 보다. 자리에 앉았고, 샴푸부터 시작이 되었다. 나름 미리 준비해온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머리를 잘라달라고 부탁도 했다. 고급진 미용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은 것도 잠깐, 친정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둘째가 너무 울고 보채고 있지는 않을까’ ‘첫째는 아직 한국어도 서툴고 일본어밖에 하지 못하는데..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애먹고 있지는 않을까’로 시작한 걱정은 어느새 불안함으로 바뀌어 버렸다. 결국 빨리 마무리 지어달라며 제대로 컷트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고 지불한 금액은 70불.

머리를 자르고 얼른 돌아온 나를 보며 엄마는 무슨 머리를 이렇게 빨리 잘랐냐며 오히려 더 놀라셨다. 엄마는 “세라야, 70불 아낀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너가 잠깐 없다고 해서 애들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머리 이렇게 자르니까 훨씬 이쁘네. 아무리 바빠도 한달에 한번 꼭 미용실 가서 예쁘게 머리 잘라라”고 하셨다. 그렇다. 엄마에게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아주머니이기보다 그저 이쁜 딸인 것이다. 나는 좀 더 이뻐져야겠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를 위해서.

<안세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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