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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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역사 속의 하루

2020-01-17 (금) 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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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루의 기회뿐이라서 더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생겼다. 이벤트 상영인지 딱 하루, 두 번만 상영한단다. 1939년 첫 상영을 했던 영화니 적어도 네다섯 번은 본 영화기도 하다. 하지만 또 보고 싶었다. 그 영화를 처음 봤던 그때의 감동과 여운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처음 본 건 1984년쯤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보았다. 여타의 단체관람 영화는 하루 수업을 하지 않고, 학교 밖 세상에서 놀 수 있다는 의미가 컸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남북전쟁, 타라 농장 그리고 세상과 맞서 싸우는 스카렛의 변화는 한참 동안 우리들의 관심사가 됐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병원에 입원했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링거까지 맞게 된 상황이었지만 입원 내내 펄 벅(Pearl Buck)의 ‘대지’를 읽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어머니는 꽤 두꺼웠던 그 책을 사 주시고는, 나를 병실에 혼자 두고 집에 다녀 오시곤 했다. 세계 명작 동화책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왜 어머니는 그때 그 책을 사 주셨었는지 아직도 나도 어머니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땅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지닌 ‘왕룽’과 가족에 대한 진한 사랑의 ‘오란’을 그린 이 책은 동화책만 읽던 날 혼자서도 씩씩하게 링거를 맞을 만큼 어른스럽게 만들어 준 책이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책보다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먼저 알게 되었고, 26년의 집필 기간만큼 권수도 많아, 나 역시 시간을 두고 읽었던 책이다. 16권이나 되는 책엔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고, 주인공 ‘서희’ 말고도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 많아 공부하듯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하동 평사리를 시작으로 간도, 서울, 진주, 동경 곳곳의 우리를 써 내려간 한 줄 한 줄이 꼭 내가 아는 내 조상들의 삶 같아 읽는 내내 가슴이 아릿했다.

한 나라를 다 태워 버릴 것 같은 불이 나고, 비행기가 추락해 사람이 죽고, 총을 겨눠 서로를 죽이고…. 책 속의 세상만큼 지금 이 세상도 결단코 만만치 않다. 아마도 누군가는 마가렛 미첼이 되어, 펄 벅이나 박경리가 되어 지금 세상을 써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또 그 책엔 모두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우리의 하루하루가 소중한 한 줄이 되어,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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