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가 밝았다. 한 해가 밝을 때마다 서로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 후 “세월이 너무 빠르지 않니?”라는 구절이다.
“한해가 도대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 또는 “벌써 새해라니” 라며 자신의 신상이나 모습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데 어느새 한해가 지나갔다는 사실에 아쉬움과 허탈감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얼마 전 할아버지와 식사를 했을 때였다. “니가 올해 몇 살이냐” 하시기에 “3x(30대 후반) 예요”라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놀라지도 않으시며 “이러다 금방 환갑이겠네” 라고 하셔서 박장대소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같은 속도로 시간이 가다가는 환갑이 어느 순간 코앞에 와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다고 느껴지는 건 나이가 들수록 확실히 더 하다.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인생은 10대에는 시속 10km, 20대에는 시속 20km, 그 이후 40, 50대에는 시속 40, 50 km의 속도로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잘 와 닿지 않았지만 30대 후반으로 들어가니 실감이 난다.
일상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무엇을 할지 스케줄을 짜고, 주말과 다 달의 계획, 또 출장 계획, 가족여행 계획까지 세우며 일년을 두고 보면, 한 주 한 달이 어찌 그렇게 빨리 지나 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심리학자의 논문을 보게 되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두고 시간이 빠르다 혹은 느리다라고 하는 것은 그저 느낌의 차이일 뿐 이는 각자의 생활 패턴이나 사물을 머릿속에서 처리하는 속도라고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하기 보다는 익숙한 생활을 연속해서 하는 경우가 많아 특별히 새로운 것을 머릿속에서 처리하는 과정이 없어 시간이 빠르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습관대로 커피를 마시고, 회사에 나가 업무를 하고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고 퇴근하여 집에 와서 내가 계획하고 예상했던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뭇 건조한 일과이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아직 많은 것들이 새롭게 느껴져 아침에 똑같이 일어나 학교를 가도, 보지 못했던 사물을 보고, 듣지 못했던 말과 단어를 듣는다. 많은 것들을 프로세스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아니면 더 많은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도 가끔 새로운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낯선 환경에 가면 하루가 여느 때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보고 먹고 듣고 느끼다 보니 머릿속에서 새로운 것 들을 프로세스하는 시간이 길어 생기는 현상이란 말이다.
이런 걸 읽다 보니 퍽 서글퍼졌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진부해 진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이번 해의 나의 새해 다짐은 특별한 것이 없다. 매일 걸어가는 길이 아닌 길을 일부러 택하여 걸어도 보고 다른 버스를 타고 출근도 해보고,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것들만 고집하지 않고 최대한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보려 한다.
그리스 신화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의 시간처럼 시간의 주인이 되어 안 가본 곳에 과감히 여행을 가본다든지, 다양한 사람들과 일부러 만나서 얘기도 해보려 한다. 그렇게 내 머리속에 새로운 것을 충분히 공급해 얼마가 될지 모를 내 인생을 최대한 스파게티처럼 길게 늘어뜨리는 노력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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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