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딩동. 아침부터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려댄다. 전화기를 열어보니 새해 인사가 한 다발이다. 그러고 보니 신정이다. 특별히 새해가 되었다고 카운트다운도 하지 않았고 해돋이 구경도 가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새해 인사 문자를 보고 있자니 나도 문자를 다 돌려야 하나 싶다가도 오늘 하루 벌써 수많은 문자를 받았을 사람들에게 내 문자가 또 하나의 스팸이 되지 않을까 싶어 관뒀다.
나이가 차니 인생에 리셋하고 싶은 것도 없거니와 새해엔 특별히 대박이 났으면 하는 욕심도 굳이 부리지 않는다. 한 살 더 먹었다고 그리 슬프지도 않다. 새로운 해라고 하지만 어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어제보다 아침저녁으로 조금 더 쌀쌀해진 것이 굳이 찾아낸 바뀐 점이다. 살면서 보니 새 것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충분히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 기억들로 새로운 오늘을 살 수 있음에 늘 감사할 뿐이다. 하루만 지나도 헌 것이 돼버리는 시간의 야속함이야 물어 뭣하겠는가.
누가 시간을 만들고 달력을 만들어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만들고 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아마도 ‘다시’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새해가 되어 다시 무엇을 계획하고 다시 시작하려고 하지만 그 주체인 나는 새해가 되었다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나는 어제도 나였고 오늘도 그 나다. 내일도 나는 나일 것이다.
새해를 맞아 새로움에 들뜬 이들의 마음을 망쳐놓으려는 심보는 아니다. 단지 어제에 살고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 나에게 꼭 ‘다시’라는 말이 필요 없이도 그 하루하루가 충만하기를, 살아있음에 감사하기를 바란다.
새해 안부를 물어오는 이들 중 누가 새해 계획이 무엇이냐 묻길래 본래 계획하지 않고 살기에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했다.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인 연간 계획들 속에 바로 지난해의 계획에 대한 성찰은 있었는지 묻고 싶다. 연초를 채 벗어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계획들. 퇴고 과정 없이 또 새해를 맞아 쏟아내는 계획과 바람들이 어느 신에게 닿아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낼지 생각해 본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다. 어릴 적 계획한 장래희망 란에 적어놓은 직업을 가지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매일 다이어트 계획을 공공연하게 밝히던 친구는 지금 날씬해졌는가. 회사에서 늘 하던 상반기, 하반기, 5개년 계획 등 수많은 계획은 한낱 숫자놀이처럼 느껴졌으며 그 계획을 한 사람이 결과물을 보거나 책임을 지기도 전에 회사를 나가거나 잘리는 것도 봐왔다. 그냥 그렇게 계획은 계획으로 남았다.
계획하다는 말에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절차, 방법, 규모를 헤아려 작정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담겨있다. 절차, 방법, 규모라니… 사람 사는 인생사가 절차, 방법, 규모를 다 따져 헤아릴 수 있는 것이었나. 그리고 무엇보다 계획에는 오직 미래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래서 계획이 없다. 대신 다짐한다. 다짐은 이미 한 일이나 앞으로 할 일에 틀림이 없음을 단단히 강조하고 확인하는 작업이다. 다짐 안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 또는 흡족함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다.
우리는 “난 전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 계획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난 전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래서 2020년의 첫 날, 계획 대신 다짐을 해본다. 어제보다 오늘 더 충만한 삶을 살고 내일은 더 나아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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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